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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 갤러리 광활한 바다 위의 배와 인간
닉네임관리자 작성일2017-09-26 조회수306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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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 갤러리

 

광활한 바다 위의 배와 인간

 

글 이연식(미술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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옆구리의 흰 연기

유럽의 회화 중에는 바다 위의 범선이 많다. 그런데 이들 그림을 보면 배의 옆구리에 흰 연기가 달려 있는 경우가 적지 않다. 가까이 붙어 있는 다른 배를 향해 대포를 쏘고 있는 것이다. 그림 속에서 서로 싸우는 배들은 네덜란드나 영국, 프랑스나 스페인의 배들이다. 왕실 해군의 전함일 수도 있고, 무장한 상선이거나, 정부의 허가를 받아 적국의 상선을 나포하는 사략선일 수도 있다. 이들은 도버 해협, 지중해, 카리브 해, 인도양 할 것 없이 온 세계의 바다에서 격돌했다. 상대에게 포탄을 안겨 배의 돛과 밧줄을 찢고 돛대를 부러뜨리고 승무원들을 죽였다. 저마다 바람과 해류에 온 신경을 기울여도 모자랄 만큼 위험한 바다에서, 다른 배를 항해 불능의 상태로 만들기 위해 애를 썼다. 이 배들이 바람의 방향에 맞춰 돛을 다뤄가며 이리저리 방향을 돌려가며 적에게 근접하여 포격을 가하는 복잡한 기술은 경이롭다. 하지만 두렵고 위태로운 바다 위에서 프랑스와 영국의 구분은 무슨 필요이며, 무사히 항구에 닻을 내리는 것보다 중요한 목적이 또 뭐가 있다는 말인가?

조금 더 거슬러 올라가자면 ‘지리상의 발견’을 맞으면서 유럽인들은 바다와 배를 그리기 시작했다. 주로 네덜란드 농촌의 풍속을 많이 그린 것으로 유명한 화가 피터르 브뢰헬(Pieter Brueghel de Oude, 1525년경-1569년)은 드물게 배와 바다를 그렸는데, 그가 남긴 몇 점 안되는 해양 풍경화 중 하나는 나폴리 항구의 모습을 그린 것이다. 브뢰헬은 화가로서 자리를 잡은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네덜란드를 떠나 이탈리아와 프랑스 등지로 돌아다니며 회화를 공부했다. 브뢰헬이 타지에서 어떤 식으로 지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이 무렵에 그린 <나폴리 앞바다>는 이탈리아의 풍광을 직접 묘사한 것으로, 브뢰헬이 당시의 이탈리아의 예술에서 습득한 것이 무엇이었는지를 보여준다. 가까운 것을 크게, 먼 것을 작게 그리면서 드넓은 공간을 현실감 있게 구성하는 원근법이었다. 성벽으로 둥그렇게 둘러싸인 항구도시 앞쪽에 범선들이 유유히 움직인다. 그런데 찬찬히 보면 이 배들은 서로를 향해 대포를 쏘고 있다. 갤리선이 항구를 향해 전진하고, 범선들은 격돌하고, 화면 왼편 구석에서는 벌써 몇 척의 범선이 가라앉고 있다. 얼핏 보기에는 평화로운 항구의 모습 같지만 실은 아비규환이다. 브뢰헬이 묘사한 것이 어떤 전투인지는 알려져 있지 않다. 실제로 벌어진 사건인지 어떤지도 분명치 않다. 아마도 브뢰헬이 상상으로 구성한 전투일 거라고 짐작된다. 한데 이 그림에는 브뢰헬이 인간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이 드러나 있다. 멀리서 보면 느긋한 이야기, 가까이서 보면 끔찍한 비극이다. 브뢰헬은 네덜란드로 돌아간 뒤로 농민의 생활을 주로 그렸는데, 그런 그림들에도 묘하게도 냉소적인 느낌과 거리감이 담겨 있다.

 

표정 없는 세상의 두려움

브뢰헬의 작품 중에서 바다를 그린 그림으로는 <이카로스의 추락>이 가장 유명하다. 이카로스는 그리스 신화에 등장하는 유명한 젊은이다. 이카로스의 아버지는 다이달로스인데, 건축가이자 기술자로서 온갖 물건을 다 만들었던 다이달로스는 크레타의 왕 미노스의 명령을 받들어 유명한 미궁(迷宮)을 만들었다. 그런데 미노스는 미궁을 만드는 일이 끝나자 다이달로스 부자(父子)를 높은 탑에 가둬 버렸다. 탑을 빠져나가 고향으로 돌아가기 위해 다이달로스는 새의 깃털을 모았다. 모은 깃털을 밀랍으로 이어 굳혀서 큼지막한 날개 두 쌍을 만들었다. 자신과 아들이 한 쌍씩 달고 날아갈 생각이었다. 날개를 달고는, 날아가기 전에 아들에게 당부했다. 너무 높게 날면 햇빛 때문에 밀랍이 녹을 것이고, 너무 낮게 날면 바닷물을 머금어 날개가 무거워질 것이다. 반드시 중간 높이로 날도록 해라. 하지만 이카로스는 막상 날기 시작하자 들뜬 나머지 한껏 높이 날아올랐다. 밀랍이 녹으면서 이카로스는 바다로 떨어져 죽었다.

제목으로 짐작하면서 이 그림 속에서 이카로스를 찾다 보면, 이야기의 주인공이 그림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너무 작아서, 그림이 주인공을 다루는 방식이 너무도 야박해서 놀라게 된다. 화면 오른편 구석, 바람을 받아 돛이 팽팽한 배의 앞쪽 바다에 버둥거리는 두 다리가 보인다. 주변에는 깃털이 날린다. 이카로스라는 걸 알 수 있다.

뱃사람들, 낚시꾼, 양치기, 그리고 화면 앞쪽에 커다랗게 그려진 농부 등, 많은 사람이 등장하지만, 아무도 이카로스의 존재를 알아차리지 못한다. 사람이 날개를 달고 하늘을 나는 모습이 신기했을 테고, 그렇게 날던 사람이 아래로 떨어져 내리는 모습은 더욱 더 눈길을 끌었을 텐데도, 기이하게도 그림 속의 사람들은 모두가 눈길을 다른 방향으로 돌리고 있다. 마치 작정이라도 한 것처럼 이카로스의 운명을 외면하고 있다.

이카로스의 이야기는 인간의 교만을 가리키기도 하고, 꿈과 이상에 대한 동경을 나타내기도 한다. 때로는 황홀한 상승에 따라오는 끔찍스러운 추락을 암시한다. 이 그림은 브뢰헬의 그림으로 여겨져 왔지만 여러 모로 의심스럽다. 특히 앞쪽의 농부를 묘사한 필치를 보면 도저히 브뢰헬이 그렸다고는 보기 힘들 만큼 조잡하고, 전체적으로 화면을 원근법으로 구성하는 솜씨도 들쑥날쑥하다. 앞서 본 <나폴리 앞바다>와 비교하면 원근법의 미숙함이 두드러진다.

애초에 브뢰헬이 이카로스를 그린 그림이 따로 있었고, 누군가가 그걸 모사한 그림이 이것이라고 짐작해 볼 수 있다. 브뢰헬이 그린 그림을 그의 아들이 모사한 작품도 꽤 많은데, 이 그림을 그린 화가의 솜씨는 ‘아들 브뢰헬’보다도 떨어진다. 이런저런 이유로 이 그림은 브뢰헬 자신의 그림이라고 보기는 어렵지만, 그럼에도 브뢰헬이 세상을 대하는 방식을 어느 정도 보여준다. 드넓은 공간 속에 주제를 짐짓 무심하게 배치한다. 세상 한 구석에서는 누군가 불행한 일을 겪고 있는데, 나머지 세상은 평온하기 이를 데 없다. 온 세상이 평온하기에 사건은 더욱 기이하고 더욱 비극적인 것이 된다.

이카로스를 다룬 다른 회화들에는 아버지와 아들이 함께 등장하는 경우가 많은데, 이 그림에 다이달로스는 보이지 않는다. 화가는 새의 시선을 취하고 있고, 다이달로스는 지금 날개를 달고 있을 테니, 이는 다이달로스의 시선이다. 아버지는 광활한 세계가 자신의 아들을 아무렇지도 않게 삼켜 버리는 모습을 내려다보고 있는 것이다. 바다를 개척하면서 유럽인들은 표정 없는 세상의 거대함과 두려움을 의식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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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설명

 ilovepdf_com-142.jpg 이미지입니다.

찰스 오거스트 몬위크, <영국의 ‘산피오렌초’ 호와 프랑스의 ‘피에몽테즈’ 호의 전투, 1808년 3월 6~8일>, 1842년.

ilovepdf_com-143.jpg 이미지입니다.

브뢰헬, <나폴리 앞바다>, 1558년경.

ilovepdf_com-145.jpg 이미지입니다.

브뢰헬, <이카로스의 추락>, 1560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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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lovepdf_com-144.jpg 이미지입니다.

이연식

미술사가. 그림과 텍스트를 함께 보고 쓰고 우리말로 옮기는 일을 한다. 서울대학교 미술대학 서양화과, 한국예술종합학교 미술원 미술이론과를 졸업했다. 『유혹하는 그림, 우키요에』 『아트 파탈』 『응답하지 않는 세상을 만나면, 멜랑콜리』 『괴물이 된 그림』 『이연식의 서양미술사 산책』 등을 썼고, ‘무서운 그림’ 시리즈, 『다케시의 낙서 입문』 『마리 앙투아네트 운명의 24시간』 『모티프로 그림을 읽다』 『레 미제라블 106장면』 등을 번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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콘텐츠 최종 수정일 :
2017-09-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