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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촌여지도 조회
바다와 영화 홍상수 감독의 <밤의 해변에서 혼자>(2017)
닉네임관리자 작성일2017-09-26 조회수27042

바다와 영화

 

홍상수 감독의 <밤의 해변에서 혼자>(2017)

 

외롭고 쓸쓸한 겨울 바다

함부르크와 강릉

 ilovepdf_com-140.jpg 이미지입니다.

글 한창호(영화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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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상수의 <밤의 해변에서 혼자>는 슈베르트의 ‘현악5중주’ 선율로 시작한다. 슈베르트가 죽기 불과 두 달 전에 작곡한 작품으로, 비극적 선율 때문에 경우에 따라서는 레퀴엠처럼 연주되기도 한다. 그만큼 슬프고 자기 연민을 느끼게 만든다. 특히 2악장 아다지오는 슈베르트 자신의 죽음을 예감하듯, 현악기의 애잔한 소리들이 필멸의 슬픈 운명을 위무하듯 연주된다. 누구라도 ‘현악5중주’에서는 죽음처럼 외롭고 쓸쓸한 느낌을 받을 것 같다. 이 음악으로 문을 여는 <밤의 해변에서 혼자>는 슈베르트의 슬픔으로 영화 전체의 감정을 조절하고 있는 셈이다. 슈베르트의 음악이 가장 큰 공명을 울리며 퍼져가는 곳이 바로 함부르크와 강릉의 바다다.

 

슈베르트 ‘현악5중주’의 슬픔

<밤의 해변에서 혼자>의 주인공인 영희(김민희)는 배우다. 이미 결혼한 영화감독과 제법 사귀었는데, 최근에 그 관계 때문에 적지 않은 아픔을 겪었다. 영희가 마음 둘 데 없어, 찾아간 곳이 독일의 항구도시 함부르크다. 선배 언니(서영화)가 그곳에 살고 있다. 영희는 낯선 도시에서 동네 주변과 공원을 걷고, 선배와 이야기도 하며, 서울에서의 일을 잊으려고 애쓴다. 영희는 선배의 독일인 지인들과 함께 저녁 무렵 해변을 찾았다. 푸르스름한 색깔이 바다와 해변을 감싸고 있어서인지, 영희의 마음은 더 차갑고 외로워 보인다. 영희는 말로는 그 남자를 기다리지 않는다면서, 얼마나 보고 싶은지 해변의 모래밭 위에 그 남자의 얼굴을 그리기도 한다. 최근에 머리를 밀다시피 깎아 대머리처럼 보인다는 남자의 얼굴이다. 일행들은 집으로 돌아갈 준비를 하고 있는데, 그때 바닷가엔 슈베르트의 5중주가 들려오고, 무슨 영문인지 영희는 혼절한 채 검정색 복장의 어느 남자의 어깨에 얹힌 채 화면 밖으로 사라진다.

홍상수의 영화에서 현실과 환상(주로 꿈)이 섞이는 초현실적인 장면은 이제 하나의 클리셰가 됐다. 함부르크 시퀀스의 마지막에 등장하는 남자는 바로 그런 초현실적인 존재다. 그는 영희가 공원을 걸을 때 갑자기 다가와 마치 죽음의 메신저처럼 “지금 몇 시냐?”고 묻더니, 이번엔 영희를 피안의 세계로 인도하듯, 어깨에 그녀를 걸머지고 ‘저쪽으로’ 등을 보인 채 걸어가고 있다. 말하자면 죽음의 강력한 비유법인 셈인데, 아마 영희의 아픔이 죽음과 같으리라는 상상일 테다. 여기서 슈베르트의 음악은 제법 길게, 마치 죽음과 같은 상처를 안은 영희를 위무하듯 연주되는 것이다. 함부르크의 바다는 더욱 푸르게, 결국 검푸른 색으로 변해간다.

<밤의 해변에서 혼자>는 1부와 2부로 나뉜다. 2부가 시작될 때는 아예 크레딧이 새로 뜬다. 그리고는 2부가 곧장 이어지는데, 영희는 강릉의 시네마테크에서 영화를 보고 있다. 무슨 영화인지 영희의 눈가에 눈물이 맺혀 있다(장-뤽 고다르의 <비브르 사 비>에 대한 강렬한 오마주로 보인다). 그렇다면 이제 외국에서 돌아온 영희의 강릉 이야기가 시작되는 것으로 해석할 수 있고, 혹은 1부는 그냥 강릉의 시네마테크에서 영희가 본 영화라고 해석할 수도 있다. 마치 <극장전>(2005)의 전반부가 현실이 아니라 영화였듯 말이다. 만약 그렇다면, 영희는 ‘영화’ 속 인물과 강력한 동일시를 느껴 눈물을 흘렸을 것이다. 이렇게 홍상수 영화의 특성대로 내러티브 속에 여러 겹으로 해석할 수 있는 장치들을 심어놓아, <밤의 해변에서 혼자>는 1부에 등장한 독일인 작곡가의 말처럼 ‘언뜻 쉬워 보이지만, 자세히 보면 복잡한 영화’이다(이게 홍상수 영화의 미덕인데, 동시에 이 점은 국내의 많은 관객에게, 또 해외의 관객에게까지 대중성 확장이란 면에선 단점일 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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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부르크와 강릉 바다의 대조법

2부의 강릉 이야기에서의 영희도 유부남 영화감독과 사귄 뒤 이별의 아픔을 겪는 배우로 설정돼 있다. 1부가 현실이든 허구이든, 그 속의 영희와 강릉의 영희는 비슷한 삶의 궤적을 그리고 있는 셈이다. 영희는 최근 외국에서 돌아왔고, 강릉에 있는 선배 언니(송선미)와 겨울 바다를 볼 예정이다. 강릉에서도 영희는 ‘그 감독’을 잊지 못해 해변의 모래밭에 그의 얼굴을 그려놓았다. 전날 밤 강릉의 지인들과 진탕 술을 마신 뒤여서인지, 영희는 얼굴을 그려놓은 해변에서 잠이 들고 말았다. 나중에 밝혀지지만 이후의 이야기는 영희의 꿈이다(홍상수 영화가 그렇듯 이후의 이야기가 꿈이라는 친절한 영화적 장치는 없다).

꿈에서 영희는 장소 헌팅중인 ‘그 감독’의 일행을 만난다. 그런데 그 감독(문성근)은 1부에서 영희가 해변에 그린 ‘대머리’가 아니다. 머리숱이 제법 많다. 눈치 빠른 관객들은 이미 이때 영희가 지금 만나는 감독은 1부에서 말한 ‘그 감독’이 아니란 사실을 알았을 것이다. 꿈속의 인물이라 논리적인 잣대만 갖다 대는 건 무리지만, 최소한 문성근이 연기한 꿈속의 감독은 1부에서 영희가 그리워했던 ‘그 감독’은 아닌 것이다. 말하자면 영희가 함부르크까지 가야할 정도로 마음에 큰 상처를 남긴 ‘그 감독’과의 재회는 영화 속에서 일어나지 않는다.

꿈에서 깨어난 영희는 ‘그 감독’과의 상처로 아파하는 영화 초반부의 그 모습 그대로다. 마치 죽은 사람처럼 영희는 모래밭 위에 누워 있고, 어떤 청년(꿈속의 조감독, 안재홍)이 ‘일어나라’고 깨우고 있다. 겨울 바다에서 그렇게 오래 자고 있으면 위험하다는 이유에서다. 강릉의 겨울 바다는 사람들이 없어 외로워 보이지만, 함부르크와는 달리 제법 햇살이 비치는 밝은 공간으로 표현돼 있다. 영희는 혼자 일어나 모래사장을 걸어가기 시작한다. 이때 슈베르트의 ‘현악5중주’가 길게 연주된다. 여기서의 슈베르트의 음악은 죽음의 진혼이기보다는 생명의 지지로 느껴진다. 청년의 ‘일어나라’는 말처럼, 비로소 혼자 선 영희의 발걸음을 지지하는 낮고 깊은 응원가 같다. 강릉의 바다는 외롭지만, 따뜻한 햇살이 영희의 등 뒤를 밝게 비추고 있는 것이다. 언뜻 보면 단순한 영화가 얼마나 복합적인 층을 만들 수 있는지, 홍상수의 <밤의 해변에서 혼자>는 압축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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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lovepdf_com-141.jpg 이미지입니다.

한창호

영화평론가. 이탈리아 볼로냐대학에서 영화학 라우레아 과정 졸업한 후 영화평론가로 활동하고 있다. 저서로 『영화, 그림 속을 걷고 싶다』 『영화와 오페라』 등이 있으며, 공저로 『필름 셰익스피어』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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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9-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