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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촌여지도 조회
바다와 추억 내 안으로 밀려들어온 속초 그 바다
닉네임관리자 작성일2017-09-26 조회수266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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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와 추억

 

내 안으로 밀려들어온 속초 그 바다

 ilovepdf_com-133.jpg 이미지입니다.

글 최영미(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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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에는 두 종류의 인간이 있다. 산을 좋아하는 사람과 바다를 좋아하는 사람. 나는 바다를 더 좋아한다. 어릴 적 속초에 살며 바다만 보면 아득해지는 DNA가 몸에 새겨진 것 같다. 내 나이 여섯 살 무렵에 부모의 품을 떠나 속초의 친척집에 맡겨졌다. 속초에서 약국을 개업한 외삼촌의 집에서 살며 바다를 처음 보았을 텐데, 내가 처음 본 바다의 이미지는 내 뇌리에 저장되어 있지 않다. 그로부터 삼십여 년이 지나, 1999년이었다. 비행기를 타고 속초공항에 내렸을 때, 나는 유년의 냄새를 기억해냈다. 코끝에 감기는 비릿한 감각을 붙들고 약간의 상상력을 보태어 ‘바다의 추억’을 소설 <흉터와 무늬>에 재현했다.

“속초는 내게 항구다. 비릿한 물 내음으로 열리고 닫힌다. 술 냄새와 뒤섞여 주위를 맴돌던 비린내. 오징어잡이 배들의 날씬한 타원형의 몸체. 부두의 시끌법썩함. 늘 어디선가 싸우는 소리가 들렸다. 배 태워달라며 절망적으로 부르짖는 내 울음이 바다에 빠진다.

삼촌은 술꾼이었다. 군복무를 했다는 것 외엔 아무런 연고도 없는 곳에서 약국을 개업한 것만 봐도 우리 삼촌이 얼마나 끝내주는 한량이었는지 알 게다. 경치 좋은 곳에서 놀고 마시고 싶어서 속초로 내려온 사람이니 약국일은 뒷전이고, 저녁만 되면 학교에서 돌아온 이모에게 가게를 맡기고 친구들과 술 먹으러 돌아다녔다.” - 최영미 소설 <흉터와 무늬>에서

 

동해의 그 막막한 푸른빛에 홀려 나는 아예 속초로 이사했다. 언제까지 수도권에서 비싸고 불편한 전세를 살아야 하나? 미분양 아파트를 한 채 사서(소유권을 얻은 최초의 내 집이었다!) 2000년 봄까지 속초에 살며 나는 지겹도록 바다를 보았다. 내가 운전대를 처음 잡은 곳도 속초에서다. ‘여기서 살려면 애인은 없어도 차는 있어야 한다.’는 아줌마의 말에 솔깃해 운전학원에 등록했다. 강릉의 면허시험장에서 면허를 따고, 내 차를 사고 며칠 뒤에 해변도로를 내달렸다.

속초에서 강릉까지 길이 얼마나 예쁜가. 가을이 깊어가던 어느 날, 38선 휴게소 부근이었다. 인적이 끊긴 해변에 하얀 뱃가죽 내놓고 떼 지어 서 있는 몸집이 큰 바닷새들을 보았다. 백로인가 갈매기인가? 희한하게도 약속이라도 한 듯 모두 바다를 등지고 엉거주춤한 녀석들이 참 이상했다.

“우리 집 베란다에서 바다가 보여. 뒤 베란다로는 설악산이 보여. 여긴 눈이 아주 푸짐해. 한번 내렸다하면 내 허리까지 파묻힐 정도라니까.” 너스레를 떨며 어서 놀러오라고 친구들에게 전화질을 한 뒤에, 새천년을 동해에서 맞이하려는 친구들이 속초에 나타났다. 몇 달 살았다고 속초 사람이 다 되어 (관동팔경의 하나인 청간정과 지금은 그 이름들을 거진 잊어버린) 여기저기를 안내하고, 철조망 너머로 푸른 바다가 보이는 해변을 배경으로 찍은 사진이 그 시절의 추억으로 남았다.

아무런 연고도 없는 곳에서 약국을 개업했던 외삼촌처럼, 나도 아무도 아는 이 없는 속초로 이사를 감행했다. 날 거기로 이끈 것은 어린 날의 ‘가짜’ 추억이었다. 엄마와 이모가 내게 “영미, 너 기억나지? 니가 글쎄- 중앙동 깡패였어. 속초 바닥에서 이 이름이면 모르는 사람이 없었어. 계집애가 동네 남자애들을 몰고 다니며 못 하는 짓이 없어 붙여진 별명이야.” 내가 깡패였다고? 남의 가게 유리창을 깨고, 얼마나 장난이 심한 아이였는지 어른들이 내게 환기시켜 주었지만, 내가 기억하지 못하는 유년의 시간이었다. ‘깡패’라는 말을 할 때 엄마의 입가에 맴도는 미소가 나는 좋았다.

마흔 살의 생일을 나는 속초에서 혼자 보냈다. 시내의 꽃가게에서 꽃을 사고 (아주 핸섬하고 매너가 좋았던 꽃집 아저씨가 생각난다. 지금도 그 자리에서 꽃을 팔까. 그는 속초 바닥에서 내가 발견한 가장 멋진 남자였다.) 유리로 된 예쁜 꽃병도 사고, 케익을 사서 귀가해 홀로 촛불을 켰다. 나는 원래 혼자 잘 노는 사람이다. 내 눈 앞에 펼쳐진 자연에 매료되어, 설악산을 보고 달리며 나는 행복했다. 외롭지 않았다면 거짓말이겠지만, 내가 선택한 고독이었다. 바다를 봐도 아무렇지도 않게 될 무렵, 다시 나는 서울이 그리워 수도권으로 이사했다. 서울에서의 시간은 빠르며 덧없었다.

‘바다와 추억’이란 주제의 원고를 청탁받고, 오랜만에 앨범을 뒤졌다. 지금 보니 그 시절, 사진 속의 내 모습이 참 촌스럽다. 군복처럼 멋대가리 없는 카키색 누비잠바와 헐렁한 골덴 바지가 속초 시민인 나의 공식적인 외출복이었다. 만날 사람이 없다고 아주 펑퍼짐하게 퍼져 내가 여성인지 남성인지도 잊을 지경이었으니. 황금같은 청춘의 끝을 그렇게 흘려보냈으니, 좀 아깝다. 하지만 지금도 나는 바다, 라면 환장하는 사람. 푸른 물결과 비릿한 항구 냄새를 맡으면 심장이 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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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영미

시인. 1992년 『창작과비평』 겨울호로 등단. 시집으로 『서른, 잔치는 끝났다』 『꿈의 페달을 밟고』 『돼지들에게』 『도착하지 않은 삶』 『이미 뜨거운 것들』이 있고, 장편소설 『흉터와 무늬』 『청동정원』 출간. 산문집 『시대의 우울: 최영미의 유럽일기』 『화가의 우연한 시선』 『길을 잃어야 진짜 여행이다』 등이 있다. 시집 『돼지들에게』로 2006년 이수문학상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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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9-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