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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촌여지도 조회
바다에서도 도깨비불이 나타나는 자리를 가면 멸치가 많이 잡혔다네 학림도
닉네임관리자 작성일2017-09-26 조회수269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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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제윤의 섬과 삶

 

바다에서도 도깨비불이 나타나는

자리를 가면 멸치가 많이 잡혔다네

학림도

 ilovepdf_com-108.jpg 이미지입니다.

글·사진 강제윤(시인, 섬연구소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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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선의 추억 그리운 도깨비 섬

 

어린 시절 고향 섬마을 산속 외딴집에 살던 친구의 아버지는 밤마다 고갯길에서 도깨비를 만났다. 친구 아버지는 그때마다 술에 취해 있었고 도깨비는 언제나 씨름을 하자고 졸랐다. 하지만 결과는 늘 같았다. 친구 아버지의 완승. 다리가 하나뿐인 도깨비는 씨름으로는 결코 다리 둘인 사람을 이길 수 없었다. 그런데도 지치지도 않고 씨름을 하자고 덤비는 미련함이라니! 도깨비, 세상에 이보다 어리숙한 신(神)이 또 어디에 있을까. 친구 아버지가 다음날 낮에 멀쩡한 정신으로 도깨비와 씨름하던 장소에 가보면 쓰다버린 빗자루가 있었다 한다. 여름밤이면 마당에 멍석을 깔고 앉아 들었던 다른 도깨비 이야기들도 결코 무섭지가 않았다. 섬은 온통 도깨비와 귀신투성이였다. 사람과 도깨비, 귀신들이 함께 어우러져 살던 시절의 이야기다.

통영의 섬 학림도에도 도깨비가 유난히도 많았다 한다. 그래서 경로당에서 만난 노인의 도깨비 이야기는 끝이 없다. 도깨비는 민간신앙에서 믿어지는 초자연적 존재 중 하나다. 귀신은 사람이 죽은 뒤 그 영혼이 변한 것이고 도깨비는 돌이나 나무 같은 자연물이 변해서 생긴 것이라 믿어진다. 학림도의 도깨비는 주로 한밤중 산과 들에 나타났다. 노인은 어린 시절에는 도깨비불 구경을 많이 다녔다. 학림도 작은 시미기 뒷산 애기당에 도깨비불이 많았다. 애기당은 아이들이 죽으면 항아리에 담아다 내놓는 공동묘지였다. 아이들은 뼈가 부드러워 항아리 속에서 금방 녹아 없어져 버렸다. 그 애기당 부근에 엎드려 있으면 애기 우는 소리가 들리고 도깨비불이 켜져서 밤하늘을 돌아다녔다.

노인은 아버지에게 도깨비 애기를 많이 들었다. 노인의 아버지가 밤에 낚시를 하려고 바닷가에 앉아 있으면 어김없이 도깨비가 나타났다 한다. 도깨비는 “어이 친구 왔나?” 하면서 옆에 앉았다. 도깨비와 이런 저런 이야기도 했다. 물고기가 잡히면 도깨비는 그것을 손으로 주물럭거렸다. 아침 해가 뜨자 도깨비는 사라져버리고 이장님 아버지는 잡은 생선을 들고 집으로 돌아왔다. 그런데 생선을 꺼내자 알맹이는 없고 껍질만 남은 것이 아닌가! 그것은 필시 도깨비의 장난이었다.

바다에서도 도깨비불이 나타나는 자리를 가면 멸치가 많이 잡혔다. 섬에는 도깨비만큼이나 귀신도 지천이었다. 바다에서는 도깨비보다 주로 물귀신을 만났다. 고기잡이를 하다가 어부가 고단해서 뱃전에 누워 까무룩 잠이 들려고 하면 바다 속에서 털 난 손이 쑥 올라와 어부를 물속으로 끌고 가려고 했다. 하지만 물귀신은 어부의 상투에 맨 은동구(은동곳) 때문에 어부를 끌고 갈 수 없었다. 여자의 비녀처럼 남자의 상투에 꽂던 장신구를 동곳이라 한다. 학림 섬사람들은 은이 잡귀를 쫓는 주술적 기능이 있다고 믿어서 늘 은동구를 부적처럼 지니고 다녔다. 섬에 귀신이나 도깨비가 많다보니 그것을 방지하는 비방도 성행했다. 집집마다 사진 액자에 탱주(탱자)나무를 잘라다 붙였다. 탱자가시가 무서워 잡귀가 안 붙는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학 같은 새들이 모여드는 새섬

학림도(鶴林島)는 면적 0.722km2, 해안선 길이 7.5km의 기다란 섬이다. 55가구 120여 명이 살아간다. 학림도 인근 섬들에는 새들이 많다. 그래서일까. 학림도 또한 학 같은 새가 많다 해서 새섬이란 이름을 얻었다. 인근 섬사람들도 학림도라 하지 않고 다들 새섬이라 한다. 근처에 곤리도 또한 고니가 많이 날아 들어서 생긴 지명이다. 그래서 곤리도는 윗섬, 학림도는 아랫섬이라 부르기도 한다. 학림도는 물이 귀한 섬이었다. 지금은 해저 관로를 통해 진주 남강댐의 물이 섬까지 들어온다. 예전에는 가뭄이 심하면 식수공급선이 들어왔었다. 평상시에도 배를 타고 미륵도 달아마을까지 가서 물을 길어오거나 빨래를 해오곤 했다. 그도 아니면 물동이를 이고 산 너머까지 물을 길러 다녀야 했다. 물 때문에 겪은 여자들의 고생은 이루 다 말로 할 수가 없었다. 오죽했으면 “밤새도록 한 숟갈 두 숟갈 퍼 올려다 먹었다.”고 할까.

지금 학림도는 도미와 우럭 같은 어류 양식장이 많지만 옛날에는 섬 주변이 온통 황금어장이었다. 깔치(갈치), 조기, 삼치, 멸치가 지천이었다. 요새는 바다에 물고기의 씨가 말랐다 할 정도다. 학림도 앞바다는 평균 14미터 정도로 수심이 깊고 조류 유통이 잘 된다. 그러니 해마다 통영 바다를 덮치는 적조에도 피해가 적은 편이다. 그 바다 덕에 옛날에는 물고기가 득시글거렸었다. 지금은 큰 배들이 멀리 동중국해까지 내려가 싹쓸이 해버리니 이 바다까지 살아서 오는 놈들이 없다. 옛날 학림도 사람들은 통영 전통 어선인 통구미 배로 조업을 했었다. 먼 바다까지 나가지 않아도 만선이었으니 작은 어선으로도 족했던 것이다. 심지어 삼치 같은 큰 물고기에 쫓긴 멸치들은 뭍으로 튀어오를 정도였다. 정어리만큼이나 큰 멸치들을 그저 바구니에 주어 담기만 하면 됐다. 그야말로 바다의 황금시대였다.

 

바지락 캐기 ‘영 내리면’ 능력껏 채취

작은 시미기 앞 모래펄은 바지락 체험장이다. 마을의 공동 바지락 양식장 중 일부를 외지인들에게 개방한 것이다. 인근의 섬들 중 학림도에서 가장 많은 바지락이 나기에 가능한 일이다. 해안 도로를 따라 20여 분을 더 걸으면 큰 시미기다. 큰 시미기 해변의 바지락 양식장은 마을 사람들만 캘 수 있다. 마을 사람이라고 아무 때나 캘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어촌계에서 ‘영을 내려야’만 캘 수 있다. 전라도 섬이나 해안 지방에서는 공동 양식장의 채취를 허가하는 것을 ‘개를 튼다.’고 하는데 이 지방에서는 ‘영을 내린다.’고 한다.

왜 하필 양식장의 바지락 채취허가가 나는 것을 영 내린다고 했을까. 그것은 아마도 이 부근 섬들이 삼도수군통제영의 통제를 받았던 때문이 아닐까 싶다. 연대도가 이순신 장군 사당인 충렬사의 사패지였듯이 이 섬사람들도 통제영의 부역에 동원되곤 했을 것이다. 또한 장정들은 누구나 어민인 동시에 수자리를 살던 군인이기도 했었다. 농사를 짓거나 고기를 잡아 생계를 잇다가 때가 되면 징집을 당하기를 반복해야 했다. 통제영의 명령을 받고 일하던 때의 기억이 전승되어 언어에 남은 것이리라.

바지락 양식장은 봄, 가을 몇 차례 영이 내린다. 영이 내린 날이면 주민들은 자신의 능력껏 바지락을 캐다 팔 수 있다. 보통 한 사람이 40-50kg 정도를 캐지만 솜씨 좋고 부지런한 사람은 100kg까지 캐내기도 한다. 학림도 지명유래집이나 주민들에 따르면 시미기란 지명은 마을에서 십리길이라서 붙여진 것이라 한다. 하지만 큰 시미기까지 실제 거리는 2킬로 남짓에 불과하다. 왕복 십리라면 맞겠다. 큰 시미기 서쪽 해안은 깎아지른 기둥 같은 바위들이 장관을 연출한다. 주상절리다. 섬사람들은 기둥바위 산이라 부른다.

이 땅 어딘들 없겠는가마는 이 섬에도 어김없이 비극적인 사랑의 전설이 내려온다. 학림도 동남쪽 큰 고래개와 검금굴 사이에는 상사바위란 이름의 바위가 있다. 옛날 이 섬의 어떤 총각이 처녀를 짝사랑 하다가 상사병으로 죽었다. 총각의 혼은 저승으로 가지 못하고 뱀으로 변신해서 처녀에게 올라붙었다. 총각 귀신이 들린 처녀는 온갖 처방을 다 해봐도 떨어지지 않자 저 바위로 올라가 몸을 던졌다. 그렇게 총각도 죽고 처녀도 죽었다. 일방적이고 지나친 집착은 자신도 죽고 상대도 죽인다. 그것을 어찌 사랑이라 이를 수 있을까. 저 바위를 사랑바위라 하지 않고 상사바위라 한 것은 그 때문이 아닐까. 상사는 사랑이 아니라 병인 것이다. 아, 그러나 상사만이랴. 때론 사랑도 병인 것을. 그것도 불치의 병인 것을. 환자가 낫기를 원치 않으니 결코 나을 수 없는 불치병. 그대에게 묻는다. 그대도 나처럼 그대의 병이 치유되지 않기를 원하는가. 섬에서 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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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설명

 

? 통영 미륵도에서 학림도와 연대도 등을 순회하는 여객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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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학림도 마을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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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깨를 말리고 있는 학림마을 골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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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깨를 털어 갈무리 하고 있는 학림마을 노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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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학림도 앞바다, 오랜 항해 끝내고 침몰한 폐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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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lovepdf_com-110.jpg 이미지입니다.

강제윤

시인, 사단법인 섬연구소 소장. 『섬을 걷다』 『당신에게 섬』 『섬 택리지』 『걷고 싶은 우리 섬』 등의 저서가 있다.

페이스북 https://www.facebook.com/jeyoon.kang.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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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9-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