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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촌여지도 조회
한국어촌여지도 두 번째 여정 효심·돌담 살아 있는 섬의 가슴 전남 비금도 내촌마을
닉네임관리자 작성일2017-09-26 조회수291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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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36-37 하누넘 하트해변 이미지입니다.

한국어촌여지도 두 번째 여정

 

효심·돌담 살아 있는 섬의 가슴

전남 비금도 내촌마을

  

P36-37 하누넘 하트해변.jpg 이미지입니다.

글 박성천 사진 최현배

 

“바다 바람 맞아 사람도 시금치도 튼실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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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와 섬의 숙명을 견뎌온 비금도

신안(新安)은 1004개의 섬이 있다 해서 ‘천사의 섬’이라 불린다. 정확히 1004개의 섬이 있다는 것은 아니다. 그보다 ‘천사’와 ‘1004’를 연결하기 위한 수사적 의미가 담겨 있다. 물론 그만큼 섬이 많다는 뜻이기도 하다.

신안의 섬들은 목포의 서쪽 다도해 해역에 펼쳐져 있다. 사람들은 다이아몬드의 형상을 닮았다 해서 ‘다이아몬드 제도’라고 부른다. 자은도, 암태도, 팔금도, 안좌도, 장산도, 신의도, 하의도, 도초도, 비금도 등이 바로 그림처럼 펼쳐져 있다. 이들 섬은 ‘따로 또 같이’ 다정한 형제처럼 바다에 뿌리를 내리고 있다.

그 가운데 비금도와 도초도는 다이아몬드 제도의 꼭짓점에 해당한다. 이 두 섬을 지나면 가뭇없이 펼쳐진 흑산도의 바다가 이어진다. 그러므로 다이아몬드 제도는 비금도와 도초도까지 이름하는 것일 터이다. 비금도와 도초도는 지난 1996년 서남문대교(937m)가 개통되면서 하나로 연결되었다. 면적은 도초도가 비금도에 비해 조금 넓지만 두 섬은 어깨를 서로에게 내어주는 형제섬이 된 것이다.

비금도(飛禽島)는 섬의 형상이 날아가는 새를 닮았다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어감으로도 그렇고, 한자의 표기로도 그렇고, 시적인 이미지가 묻어난다. 목포에서 약 45km 떨어져 있지만, 다도해라는 해역이 가로 놓인 때문인지 조금은 멀게 느껴진다. 천일염과 섬초(시금치)는 전국 어디에 내놔도 뒤지지 않는 이곳의 특산품이다. 오늘의 비금도를 세상에 널리 알린 효자 품목이다.

그러나, 돈이 되는 특산품과 작물만이 지역을 대표하는 것은 아니다. 더욱이 섬은 전통과 문화, 생태와 환경이 고스란히 보존돼 있는 지역이어서 환산할 수 없는 가치를 지니고 있다. 이번 어촌여지도의 목적지는 비금도 내촌(內村)마을. ‘섬 속의 섬’이라고 할 만큼 내촌마을은 비금도의 전통문화가 살아 숨 쉬는 지역이다. 옛사람들의 삶의 방식과 지혜가 오롯이 남아 있는 마을이기도 하다.

목적지인 비금도 내촌마을을 상상하며 압해도 송공항으로 내달린다. 목포 북항에서도 배가 있지만 신안의 따사로운 품을 가늠하기 위해선 압해도에서 철부선을 타는 것도 좋다. 압해도는 섬이 목포 앞바다를 지그시 누른 형상이라 하여 이름 붙여졌다 한다.

지금은 연륙교가 연결돼 목포에서 압해도는 언제든 승용차로 건널 수 있다. “문명은 시간을 단축하는 것”이라는 말도 있지만, 그러나 연륙교 밑으로 여울지며 흘러가는 바다는 “시간을 거스르는 것이 문화”라고 말하는 것 같다. 신안을 천사의 섬이라고 부르기도 하지만 ‘아트 아일랜드’라고도 부르는 이유도 바다 때문이다. 예술의 섬이면서 문화의 섬이다.

송공항에서 비금도로 가는 첫 배는 7시 50분에 있다. 아침 일찍 서두르지 않으면 배를 놓치기 일쑤다. 더욱이 휴가철이나 성수기 때는 선착장 입구부터 줄이 늘어설 만큼 차량으로 붐빈다. 항구에 와보면 생각보다 많은 이들이 섬에 들어간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압해도 송공항으로 이어지는 2차선의 도로를 달려 마침내 선착장에 도착한다. 풍광을 감상하며 달려오는 맛이 여간 쏠쏠하지 않다.

출발을 알리는 뱃고동 소리가 항구에 가득 울려 퍼진다. 서서히 뱃머리를 돌린 배가 바다를 향해 미끄러지듯 내달린다. 따가운 햇살이 아침 바다 위로 쏟아져 내린다. 불그스름하게 빛나는 수면이 점차 은빛으로 물든다. 얼마쯤 지나자 안좌도와 팔금도가 눈에 들어온다. 옹기종기 박힌 섬들과 이웃하며 사이좋게 앉은 ‘다이아몬드 제도’는 말 그대로 수려 그 자체다.

 

돌담과 우실에 담긴 지혜와 투박함

비금도(飛禽島)의 첫 인상은 독수리를 본 느낌이었다. 가산항 부두 첫머리에 독수리를 형상화한 조형물이 서 있다. 45.25㎢에 이르는 면적과 89.2km의 해안선의 길이가 거대한 독수리로 이미지화 된다. 비금도는 원래 현재 논의 60~70%가 바다였다. 여러 개의 섬이 있었지만 수차례 간척이 진행되면서 작은 섬들이 하나의 큰 섬으로 편입됐다.

독수리 조형물 바로 옆에는 신안 천일염 보급의 시초인 박삼만 씨의 동상이 세워져 있다. 이마에 수건을 질끈 동여매고 수리차를 돌리는 박삼만 씨의 모습은 굳은 결기가 서려 있다.

“지금으로부터 68년을 거슬러 올라간다. 1946년 광복을 맞이하자 ‘먹고 살기 위해’ 만주에 갔거나, 평안도 염전에서 일했던 사람들이 비금도로 돌아왔다. 이들을 대표하는 사람이 손봉훈(孫鳳勳), 박삼만(朴三萬) 씨. 손 씨는 만주에서 평양을 거쳐서 천일제염 현장을 보고 왔다. 당시 제염 인력으로 비금도 등 섬 주민들이 평안도까지 가서 생활했기 때문에 그런 연고가 작용해 가능했다. 박삼만 씨는 한 때 평남 용강군 귀성염전 기술자였다. 전통적인 방식인 화염을 해오던 주민들은 손봉훈, 박삼만 씨와 함께 비금도 수림리 앞바다 일부를 간척하여 천일염전을 만들었다. 지게로 돌과 흙을 모아 제방을 쌓았다. 그게 ‘시조염전’이라 불린다. 그 해 6월 준공한 천일염전지에서 하얀 소금, 아니 하얀 금(金)이 나오기 시작했다. ‘반드시 성공하고야 말겠다.’는 믿음은 하얀 금으로 돌아왔다.”

전통과 문화의 마을, 내촌마을로 향하기 전 먼저 비금도의 천일염의 유래에 대해서 톺아본다. 하얀 소금이 하얀 금(金)이 되기까지의 과정이 만만치 않다. ‘비금도 소금’을 제일로 치는 것은 그만한 연유와 내력이 있을 터였다.

가산항을 벗어나자 소금의 고장답게 염전이 펼쳐진다. 넓은 염전 사이로 커다란 바위산이 뽐내듯 존재를 드러낸다. ‘덕산’(74m)이라 불리는 산인데 아래로 넓은 염전이 자리한다. 덕산은 문어적 표현이고 이곳 사람들은 구어적 표현인 ‘떡메산’이라고 부른다. 후자가 훨씬 정겨운 것은 떡메가 주는 풍성함과 촌스러움의 이미지 때문이다.

“비금도 염전은 총 길이가 약 10여 km에 달하지요. 주로 동쪽 해안에 염전이 자리하는데 저기 떡메산 아래쪽이 대동염전입니다. 1948년을 전후해 비금도 주민 450가구가 결성한 조합이 모태가 되었습니다. 약 100ha의 광활한 염전은 설립 당시로는 국내 최대 규모였다고 하네요.”

장미희(57) 비금면 자원봉사회장의 설명이다. 유명한 배우의 이름과 같은 동명이인이다. 비금도 홍보라면 자신의 일처럼 가이드를 자청한단다. 마음씨는 더 말할 필요도 없을 것 같다. 애향심이 남달라 보여 이곳이 고향인가 물었더니 예상했던 대로다. 비금도에 내려온 지는 20여 년 가까이 된다고 한다. 그녀는 “젊은 시절 사업도 하고 큰돈도 만져봤지만 예상치 못한 일로 큰 손실을 입었다”며 “비금도에 들어온 이후 염전 일도 하고, 식당도 하면서 서서히 기반을 잡았다”고 말했다.

장 회장이 들려주는 이야기를 들으며 내촌마을로 들어선다. 섬의 특성상 비금도 또한 바람이 많은 곳이다. 늦여름이지만 차장 밖으로 바람이 불어온다. 한겨울에는 바람의 기세가 만만치 않을 것 같다.

“내촌마을은 비금도뿐 아니라 신안에서 전통문화가 가장 잘 보존돼 있는 마을입니다. 인근에 해변이 가까이 있어 바닷바람이 센 곳이지요. 보다시피 마을을 에둘러 싸고 기다란 돌담이 이어져 있습니다.”

외지인을 맞이하는 것은 정겨운 돌담이다. 구불구불하기도 하고, 직선처럼 반듯하기도 하다. 골목마다 드리워진 돌담은 작은 요새를 닮았다. 담은 대략 2m 안팎에 길이는 3km에 이른다. 지난 2006년 등록문화재 제238호로 지정된 돌담길은 전통 시골의 모습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저기 멀리 보이는 산이 선왕산입니다. 선조들은 산 중턱에서 돌을 날라 돌담을 쌓은 거지요. 물론 당시에는 유일한 운송 수단이 지게였을 거구요. 구불구불한 산길을 휘돌아 무거운 돌을 지게에 지고 내려왔을 수고를 생각하면 눈물겹지요.”

“내촌마을의 돌담은 옛사람들의 정성과 지혜의 결실”이라는 말에 절로 수긍이 간다. 오랜 세월이 흘렀을 터인데 원형 그대로 보존돼 있다는 사실이 놀랍다. 돌 모양은 하나같이 뾰족하고 울퉁불퉁하다. 산이나 들판에 뒹구는 자연 석재를 그대로 축조했다는 방증이다.

“사람들의 얼굴과 성격이 제각각이듯 돌들도 마찬가지입니다. 담장을 쌓은 이의 정성도 정성이지만, 쓰임에 맞게 제자리를 찾아들어 간 돌들의 순응도 대단하지요.”

거칠고 척박한 환경을 이겨온 마을 주민들의 강인함이 느껴진다. 돌담을 따라 걷는다. 집집마다 색다른 꽃들이 피어 있다. 돌담 너머로 언뜻언뜻 보이는 꽃들은 수줍다 못해 앙증맞다. 색동호박, 접시꽃, 능소화…. 시골 돌담을 배경으로 피어난 꽃이라 더 예쁘고 살갑다. 돌담 시골길에 핀 꽃이 정원에 핀 붉은 장미보다 아름다운 이유다.

 

겨울철 섬초 전국적으로 명성

현재 내촌마을은 41가구 70여 명이 거주한다. 물론 60세부터 70대에 이르는 분들이 가장 많다. 주로 밭농사를 짓는데 특히 겨울철 섬초(시금치)를 많이 재배한다. 알려진 대로 비금도 섬초는 겨울 해풍을 이겨낸 탓에 맛 좋기로 유명하다. 1996년 비금농협에서 ‘섬초’라는 브랜드로 출하되면서 지금에 이르렀다.

“섬초는 9월 하순에 파종을 해 이듬해 3월까지 수확을 합니다. 겨울 채소 중에 시금치만큼 영양분이 풍부한 채소도 없지요. 겨울 한철 칼바람을 이겨 내었기에 비금도 시금치는 달고 맛이 있죠.”

비금도 섬초는 우리네 인생을 말해주는 듯하다. 고난과 아픔을 이겨 낸 인생이 깊이 있고 아름답지 않던가. 저편 골목 어귀에서 깨를 말리는 할머니가 보인다. 인사를 건네자 낯선 이들을 반갑게 맞아준다. “올해는 비가 많이 안 와서 깨 작황이 좋은 편이지라우. 요놈 잘 말려서 폴기도 하고, 명절 때 자석들 오면 쬐금씩 나눠 줄라고 그라요.”

김운단(82) 할머니는 깨를 뒤적거리며 만면에 미소를 짓는다. 정겨운 돌담과 할머니의 무심한 듯 순박한 표정이 조화를 이룬다. 80평생을 살아오면서 깨가 쏟아지듯 행복한 때가 언제였을까.

할머니의 안부를 묻고 마을 이곳저곳을 둘러본다. 구석구석 들여다볼수록 귀한 동네구나. 향토적 서정과 문리의 느낌이 묻어난다. 좀 더 마을에 대한 설명을 듣기 위해 장미희 회장이 소개한 마을 분을 만나기로 했다(당초에는 내촌마을 이장님을 만나기로 했지만, 하필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치통이 도져 목포에 있는 치과로 치료를 나갔다고 한다).

장 회장이 소개한 분은 이곳에서 나고 자란 강영종(66) 씨다. 그는 신안군청 사업소에서 공무원 생활을 하다 퇴직을 하고, 지금은 고향에 내려와 산다. 밀짚모자를 쓰고 농사일을 거드는 모습이 영락없는 농부의 모습이다. 그러나 안경 사이로 비치는 모습은 시골 선비의 인상이다.

“우리 마을의 특징은 크게 세 가지를 들 수 있겠네요. 선왕산 자락에 위치한 터라 마을 분위기가 안온하지요. 무엇보다 공직에 진출한 이들이 많다는 점이 자랑이겠네요. 그만큼 교육열이 높다는 뜻이겠지요.”

마을 자랑을 하는 그의 말에 자부심이 느껴진다. 또한 “신안에서 관리보존 마을로 두 군데가 지정됐는데 내촌마을이 포함됐다.”고 덧붙였다.

“내촌의 더 큰 자랑은 경로효친마을이라는 점입니다. 전남 최초로 지정됐는데, 마을 입구에 표지석이 있습니다. 도청에서 40년 전부터 내촌을 경로효친마을로 지정하기 위한 움직임이 있었어요. 그만큼 애향심이나 효 사상이 다른 지역과 비교해 남달랐다는 의미지요.”

강 씨의 말을 듣고 보니 마을 입구에서 봤던 경로효친 표지석이 떠오른다. 지금도 향우회에서는 명절 때면 어르신들을 찾아뵙고 문안을 드린다. 장미희 자원봉사회장도 회원들끼리 혼자 사는 어르신이나 거동이 불편한 노인들을 찾아가 청소도 해주고 도시락도 챙겨준다.

“옛날 우리 마을에 김옥광이라는 효자가 있었답니다. 가난했지만 부모님을 극진히 봉양했지요. 그러다 연로한 부친이 병으로 돌아가시려 하자 자신의 손가락을 잘라 피를 넣었답니다. 부친이 돌아가신 이후에는 묘 옆에서 움막을 짓고 3년간이나 시묘살이를 했구요. 효자 밑에서 효자 난다는 말이 있듯이 그의 아들도 효성이 지극했답니다. 마찬가지로 김옥광의 손자도 부친과 조부를 본받아 효행이 남달랐구요.”

강 씨는 이 모든 것이 마을을 둘러싼 지형적 환경과 주민들의 공경 의식에서 비롯됐다고 설명한다. 마을에서는 매년 정월 보름 산당제를 지낸다. 예전에는 3일 정성을 드릴 만큼 중요한 행사였다.

강영종 어르신의 말을 듣고 나자, 내촌마을이 그저 그런 자연 마을로 보이지 않는다. 이곳의 도로명 주소가 ‘효자길’로 불리는 이유를 알겠다. 비금도 내륙에 자리한 탓에 소금은 생산하지 않지만, 세상이 썩지 않도록 방부제 역할을 해준다. 경로효친은 정신적 소금에 해당한다.

마을을 넘어 그 유명한 하누넘해변으로 발걸음을 옮긴다. 마을 담장과 유사한 돌담이 보인다. 해변과 선왕산을 사이에 두고 삼거리에 자리한 기다란 담이다. 명칭은 ‘우실’. 마을의 울타리라는 뜻으로 ‘울실’이라 불린다. 이곳은 예로부터 방풍의 역할을 넘어 마을의 신이 좌정한 신정지역으로 여겨졌다.

“내월우실은 모두 두 개의 담장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대략 길이가 15m와 25m 정도 돼지요. 마을의 담장보다 높은 건 바닷바람이 마을을 덮치는 걸 막기 위해서지요.”

장미희 회장의 말을 듣다 말고 깜짝 놀라고 만다. 눈앞에 펼쳐진 하트해변의 모습이 한 폭의 그림처럼 다가온다. 굽이굽이 해안도로를 따라 펼쳐진 풍경은 선경(仙景)에 다름 아니다. 하트 모양의조형물이 이채롭다. 하트 조형 사이로 눈을 대고 먼 바다를 바라본다.

 

슬픈 전설이 애틋한 하누넘해변

하누넘해변은 바다에 나가 돌아오지 않는 남편을 기다리다 죽은 여인의 이야기가 전해온다. 누운 여자의 형상을 한 바위와 해변의 하트 모양이 절묘한 조화를 이룬다. 이곳은 드라마 ‘봄의 왈츠’ 촬영지로도 알려져 많은 이들의 사랑을 받았다.

이밖에 내촌마을 인근에는 긴 백사장이 아스라이 펼쳐진 명사십리해수욕장이 있다. 아무리 밟아도 모래에 발자국이 남지 않을 정도로 단단하다. 또한 ‘신의 한수’로 알려진 바둑기사 이세돌 기념관도 둘러볼 만하다. 기념관에는 비금도 도고리에서 태어나 ‘세상을 지배하는 돌’로 성장한 이세돌의 활약상이 전시돼 있다.

한편 염전이 많은 도고마을에서는 이와 관련한 체험을 할 수 있다. ‘햇볕, 바다, 그리고 바람이 만든 길’이라는 코스를 만들어 외지인들이 직접 걸으면서 비금도의 생태와 멋을 체험할 수 있다. 염전 체험, 섬초 수확 체험을 원하는 이들은 체험센터로 연락하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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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안 비금도 내촌마을 여행 Tip

 

돌담과 우실 등 역사적인 내력을 먼저 파악하고 방문하는 것이 좋다. 또한 돌담과 우실이 오늘날의 관점에서 왜 중요하고 보존해야 할 문화재인지를 인문학적, 인류학적 관점에서 조명하는 것도 좋을 듯하다. 단 내촌마을에는 마땅한 숙박시설이나 식당이 없다. 번거롭지만 면사무소 인근이나 명사십리해변 쪽에서 찾기를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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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부의 밥상

 

김에 싸서 간장에 살짝

뻘이 좋으니까 확실히 다른 맛

 

시골밥상의 민어회

 

P44 민어회_1.jpg 이미지입니다. P44 민어회_2.jpg 이미지입니다.

 

비금도 일대에서는 민어가 많이 잡힌다. 임금님 상에 오를 만큼 귀한 생선이라 쉽게 접하는 음식이 아니다. 장미희 비금도자원봉사회장이 추천한 ‘시골밥상’ 식당으로 민어를 먹기 위해 들어선다. 벽면에 쓰인 글귀들이 눈에 들어온다. “이모 감사합니다. 덕분에 맛있게 잘 먹었습니다. 다음에 와도 반갑게 맞아주세요.”

상차림을 보는 것만으로도 눈이 즐겁다. 톳나물, 깻잎볶음, 묵은지, 열무김치, 고추젓갈, 황석어 젓갈, 해삼, 멍게, 낙지, 우렁 등이 먼저 올라온다. 섬에서 난 것이라 첫눈에도 싱싱해 보인다. 이윽고 주 메뉴인 민어회가 등장한다. 잘 손질된 민어와 부레, 껍질이 정갈하게 놓여 있다. 불그스름한 빛과 백색의 빛, 분홍의 빛이 이질적인 조화를 이루며 식욕을 자극한다.

“민어회를 맛있게 먹는 방법은 따로 있습니다. 일반적으로 초고추장에 와사비를 찍어 먹지만, 저는 김에 싸서 살짝 간장을 찍어 먹거든요.”

맛있게 민어회를 먹는 법을 물었더니 식당 주인 김영숙(51) 씨가 소개해준 비법이다. 김 씨는 “워낙 민어를 좋아해서인지 먹어도 질리지 않는다.”고 한다. 또 하나, “상추에 맨밥과 민어를 싸서 먹어도 색다른 맛을 느낄 수 있다.”고 덧붙인다.

식당을 한 지는 얼마 안 됐지만 자연산 민어회를 먹기 위해 찾아오는 손님들이 적지 않다. 김 씨가 “서방님”이라고 부르는 문제홍(51) 씨가 직접 바다에서 민어를 잡는다. “신안 바다는 뻘이 좋아 민어의 맛이 여느 지역과는 다르지요. 남편이 바다에 나가 직접 민어를 잡기 때문에 손님들에게 신선한 민어를 드릴 수 있어요.”

산지에서 바로 썰기 때문에 씹히는 맛이 다르다. 껍질을 벗기고 결대로 써는 게 아니라, 민어는 나름의 써는 결이 있다. 토막을 내서 썰어야 모양이 예쁘게 나온다고 귀띔을 한다. 부레, 뱃살, 살, 맛있는 순서대로 민어를 음미한다. 입안 가득 신안의 별미가 살아 움직이는 느낌이다. 여름에서 초가을에 이르는 지금이 민어가 많이 나는 철이다. 그만큼 맛도 좋다는 뜻이다.

회를 다 먹고 나자 민어매운탕이 나온다. 적당히 밴 기름이 입맛을 당긴다. 칼칼하면서도 매운 맛이 입안을 단번에 장악해버린다.

“우리 집은 비금도에서 나는 천일소금으로 간을 합니다. 여기에 다시마, 마늘, 고추, 호박을 넣지요. 달짝지근하면서도 적당히 매운맛이 포인트라고 할 수 있지요.”

문의 061-275-4667, 신안군 비금면 덕산리 읍동길 3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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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일염의 산 역사

대동염전

 

100ha 넘는 규모

2007년 등록문화재 제362호 지정

 12.jpg 이미지입니다.

대동염전을 알기 위해서는 비금도 떡메산(덕산)에 올라가야 한다. 정상에 올라 발아래 펼쳐진 광활한 염전을 보노라면 비금도 사람들의 근면과 끈기, 강인함을 느끼게 된다. 예전에는 아래가 모두 바다였다고 한다. 어디선가 바닷물이 흘러드는 소리가 귓가로 스미는 듯하다.

대동염전은 1948년을 전후해 비금도 주민 450세대가 염전조합을 만든 것이 토대가 됐다. 이 넓은 소금밭을 사람들이 대동염전이라 부른 것은 그만한 이유가 있겠다. 흔히 우리 조상들은 함께 행복한 세상을 ‘대동세상’이라 일컬었다. 아마도 대동염전에는 그러한 철학과 의미가 투영돼 있을 거다.

떡메산 아래 펼쳐진 대동염전은 소금밭을 이루는 부지들이 조화롭게 구성돼 있다. 저수지, 증발지(蒸發池), 결정지(結晶池), 해주(海宙)가 펼쳐져 있다. 천일염전의 원형을 잘 보여주는 이곳은 지난 2007년 문화재지정등록문화재(제362호)로 지정됐다.

대동염전을 일구기 위한 공사는 가산과 시랑도 그리고 떡메산을 잇는 방조제 만들기부터 시작됐다고 한다. 간척지가 확보되면서 염전의 모습이 구체화된다. 100ha가 넘는 염전에서 소금이 생산되기 시작한 것은 1951년부터로 추정된다.

당시 비금도의 천일제염 기술은 전국에서도 알아줄 정도였다. 천일염전 기술자 양성소를 설치해 직접 인력을 양성했다. 이곳을 근거지로 천일제염 기술은 신안은 물론 남도의 여타 해안 지역에까지 퍼져나갔다. 우리나라 염전 역사의 토대가 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현재 대동염전은 주민들이 각기 나눠서 소유하고 있다. 규모가 큰 경우 회사 형태로 소유권을 갖고 있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외지 사람들이 소유하는 방식과도 변별된다. 말 그대로 ‘대동’이라는 말을 실현해가고 있다. 떡메산 인근에 곧 소금박물관이 건립되면 이곳은 신안의 명소로 발돋움할 것이다.

문의 비금면사무소 061-240-3728

P45 대동염전.jpg 이미지입니다. 

사진설명

비금도 대동염전은 “함께 행복한 세상을 만들자.”라는 의미가 담겨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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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설명

 

비금도 내촌마을 언덕길에 자리한 하누넘해변은 한 폭의 그림처럼 아름다운 하트해변이다.

이곳은 바다에 나가 돌아오지 않는 남편을 기다리다 죽은 여인의 전설이 내려온다. 하트 형상 조형물에서 먼 바다를 바라보는 운치는 감동 그 자체다.

11.jpg 이미지입니다.

전국적으로 명성이 자자한 비금도의 천일염은 지난 1946년 해방을 맞이해 평안도 염전에서 일했던 사람들이 돌아오면서 생산되기 시작했다.

바닷물이 하얀 소금이 되기까지의 과정은 오랜 기다림과 염부의 땀의 대가가 맞물려 이뤄진 결실이다. <비금면사무소 제공>

P38 내촌마을 돌담.jpg 이미지입니다.

P38 이색적인 조형물.jpg 이미지입니다. P38 독수리 조형물.jpg 이미지입니다.

내촌마을 돌담 풍경.(위) 비금도 인근에 자리한 이색적인 조형물.

1948년을 전후해 비금도 주민 450세대가 참여한 염전조합이 토대가 된 대동염전. 떡메산 아래 펼쳐진 대동염전은 100ha에 이를 만큼 광활하다. <비금면사무소 제공>

P41 자원봉사회 장미희 회장.jpg 이미지입니다.

비금도 자원봉사회 장미희 회장.(위)

t.png 이미지입니다.

P41 내촌마을에서 만난 할머니.jpg 이미지입니다.

비금도 특산물 섬초(시금치).(가운데)

내촌마을에서 만난, 참깨 줄기를 말리고 있는 어느 할머니.

P42 내촌마을 효자비.jpg 이미지입니다. P42 하누넘해변 라이딩 모습.jpg 이미지입니다.

 

내촌마을은 전남 최초로 경로효친마을로 지정된 모범적인 동네다. 입구 언덕에 세워진 효자비.(왼쪽)

시원스레 펼쳐진 하누넘해변을 따라 관광객이 라이딩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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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43 내촌마을-지도.jpg 이미지입니다. 

찾아가는 길

 

주소 전라남도 신안군 비금면 내월리 내촌마을

전화번호 010-5344-1839, 010-3601-8826

교통편

- 승용차

  • 서해안고속도로→목포 IC→목포여객터미널(목포북항, 송공항)

- 여객선

  • 목포여객터미널-비금도(07:00, 13:00) 대흥 고속페리 061-244-9915
  • 목포북항-비금도(05:55, 10:30, 15:20) 섬드리비금농협페리 061-244-5251
  • 송공-비금도(07:50, 14:00) 대흥 고속페리 061-244-9915

※ 출항 및 정확한 배 시간은 전화문의 후 타는 게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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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9-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