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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촌여지도 조회
한국어촌여지도 두 번째 여정 ‘소금빌레’ 돌염전의 전통 제주 애월 구엄마을
닉네임관리자 작성일2017-09-26 조회수315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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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26-27 구엄마을 소금빌레 이미지입니다.

한국어촌여지도 두 번째 여정

 

‘소금빌레’ 돌염전의 전통

제주 애월 구엄마을

 

 

P26-27 구엄마을 소금빌레.JPG 이미지입니다.

글 김용태 사진 박성배

 

“원담에 멸치 떼 들고, 소금판 빛나던 시절 있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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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명종 때 빌레뜨르 돌염전 시작

구엄마을은 제주시로부터 서쪽 16킬로미터 지점에 위치한다. 농업과 어업을 병행하는 마을로 420여 가구에 천여 명의 주민이 살고 있는 제법 큰 마을이다. 본격적인 휴가철이 지난 8월 말이라지만 관광객들의 방문은 식지 않아 보였다. 구엄포구 좌우로 뻗은 해안에는 검은 현무암들의 장관이 이어지고 여행객들은 한시도 눈을 뗄 수 없는 장엄한 풍경을 눈으로 카메라로 담기 위해 바쁘다.

제주 해안에서 현무암들을 발견하기는 백사장의 모래만큼이나 쉽지만 구엄의 현무암에는 다른 곳에서는 볼 수 없는 특징이 있다. 구엄포구의 좌측으로 해안을 따라 길이 500여 미터에 이르는 평평한 암반 지대가 보인다. 용암이 흘러내려 굳은 거대한 암반 위로 오랜 세월 파도의 침식이 진행되면서 평평한 면이 생겼다. 제주 사람들은 ‘빌레뜨르’라고 부르는 파식대다. 일부 빌레뜨르 위로 황토색 선들이 보인다. 돌소금을 만드는 염전이다.

구엄마을은 예로부터 소금을 만드는 사람들이 사는 마을이라 하여 ‘엄쟁이(嚴藏伊)’라 불렸다. 구엄마을에서 돌염전이 시작된 건 조선 명종 14년(1559년)에 강려목사가 부임하면서라고 전해진다. 강려목사가 제염법을 현지 백성들에게 가르쳐 소금을 생산하기 시작했고 생업이 되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는 문헌상의 기록일 뿐이며 사실이 아닐 수도 있다. 고려시대에도 마을 이름이 ‘엄장포’ 또는 ‘엄장이’로 불렸기 때문이다.

구엄마을이 설촌된 건 고려 원종 12년으로 보고 있다. 당시 삼별초가 애월읍 고성리 항파두리에서 최후 항거를 위해 토성을 축조할 때 주민들을 동원하였다는 문헌상의 기록이 있다. 이때를 구엄마을이 설촌된 시기로 보는 것이다. 그러나 시기는 미상이나 송 씨가 처음으로 이곳에 들어왔다는 설도 있는데 이는 구엄마을의 할망당에서 모시는 신위가 송씨할망인 것과 연관된 듯하다.

마을에 대한 설명을 듣기 위해 이장직을 맡고 있는 송승학 씨를 만났다. 포구의 동쪽, 해안도로 가장자리의 연자방아 옆에 천막 두 동이 쳐져 있었다. 한낮임에도 천막 아래에서는 왁자지껄한 윷놀이판이 벌어졌다. 공교롭게도 일 년에 한 번 있는 마을 청년회 야유회에 때를 맞춘 거다. 송승학 씨가 아이스박스에서 꺼내 준 시원한 캔 커피를 마시며 마을의 이모저모를 들었다. 그가 이야기를 하는 사이마다 다른 청년회원들이 주석을 달아주는 통에 마을의 사정이 밀물처럼 머릿속을 채워갔다.

 

과거 해조류 풍성, 톳밥·톳물회 유명

과거 구엄마을의 포구에는 각종 해산물이 넘쳐났다. 특히 해조류들이 넘쳐났다. 해서 마을의 대표 음식이 톳밥, 톳물회였다. 참모자반도 넘쳐나서 배 밑이 걸려 지나갈 수 없을 정도였다고 한다. 지금도 봄이면 해조류를 채취하지만 과거처럼 넘쳐나던 모습은 이제 없다.

송승학 씨에게 마을 이야기를 듣는 중에 가까운 해안에서 바다 쪽으로 인위적으로 쌓아둔 돌담이 보였다. 원담이다. 과거에는 원담에 멸치 떼가 가득 고이기도 했단다. 그럴 때면 멸치 떼를 가장 먼저 발견한 사람이 “멜 들어쪄!”라고 외쳐댔고 그 소식을 들은 주민들은 저마다 바구니를 들고 와 멸치를 잡았다. 마침 원담에서 고기를 잡는 사람이 몇 있어 가만히 당시의 모습을 상상해 보는데 도움이 됐다.

얼굴이 불콰하게 달아오른 송승학 씨는 웃는 낯으로 이야기를 이어갔지만 구엄의 현재에 관한 내용은 다소 쌉싸름했다. 한치철인 요즘은 밤이면 해안도로에 차를 주차할 곳이 없을 정도로 낚시꾼들이 몰려든다고 한다. 문제는 일부 낚시꾼들이 술판을 벌이기도 하고 쓰레기를 버리고 간다는 거다. 그렇다고 식당들이 장사가 잘 되는 것도 아니고 해서 골머리를 앓고 있단다. 제주도청에서도 바다 청소 인력을 기존의 100여 명에서 200여 명으로 늘린 건 제주의 다른 마을들도 구엄과 별반 사정이 다르지 않다는 뜻일 거다.

마을 어디를 둘러보든 볼 수 있는 게 있다. 구멍 난 돌들이다. 해안가의 검은 몽돌부터 집들의 담장과 밭마다 둘러진 밭담에 이르기까지 돌이 없는 곳이 없다. 이는 구엄마을만의 특징이 아닌 화산섬 제주의 전반적인 모습이다. 그러나 왜일까. 구엄의 현무암들은 보다 애착이 간다.

구엄포구의 돌들에 관한 이야기를 듣다보면 쉘 실버스타인의 『아낌없이 주는 나무』가 연상된다. 구엄포구의 몽돌들은 제주공항을 만들 때 부지를 닦는 데 사용됐다. 그 넓은 공항에 사용됐다고 하니 얼마나 많은 양의 몽돌들이 자리를 옮겼겠는가. 구엄포구 몽돌들의 수난은 이에 그치지 않는다. 한림항과 애월항의 항만 공사 당시에는 폭약으로 포구의 암반을 폭파하기까지 하며 돌을 공수해갔다. 가까이는 마을의 해안도로 밑에도 구엄포구의 돌들이 매립되어 있다.

사람들이 사용한 건 돌만이 아니다. 구엄포구의 모래도 쓰였다. 제4공화국 당시 마을마다 시멘트가 제공되면서 구엄마을 주민들은 시멘트에 구엄포구의 모래를 섞어 집을 지었다. 그러니까 마을의 오래된 집들에는 포구의 일부가 섞여 있는 셈이다. 본격적으로 마을을 둘러보기 전에 들은 마을의 돌에 관한 이야기는 이후 제주도에 머무는 내내 내 시선을 마을의 돌들로 향하게 했다.

포구의 서쪽으로 500여 미터 가량 뻗은 ‘소금빌레(돌염전)’는 구엄의 돌과 사람이 공생의 형태를 띤 경우다. 구엄의 돌염전은 육지부에서조차 찾아보기 힘든 독창적인 염전이다. 일제강점기까지만 해도 구엄마을의 40호 이상의 가구에서 돌소금 제조를 업으로 삼아 살았다. 당시 소금빌레의 규모는 1,500평 정도였으며 연간 생산량은 17톤에 이르렀다. 그러나 1950년 즈음하여 서남해안의 값싼 천일염이 도내에 유입되면서 그 명맥이 끊겼다. 1910년 기준으로 구엄의 제염 면적은 887평이었는데 이는 도내 23개 염전 중 11번째 규모이다. 반면 생산량으로는 4위였으니 면적에 비해 생산량이 뛰어났음을 알 수 있다. 거기다 돌염전에서 생산된 돌소금은 알갱이가 굵고 짠맛이 덜하며 감칠맛이 돌기에 품질 면에서도 우수했다.

 

팔순의 조두헌 옹 돌소금 제염 시범

소금빌레에 관한 보다 자세한 이야기를 듣기 위해 현재 유일하게 돌소금 제염이 가능한 조두헌(82세) 옹을 만났다. 조두헌 옹은 직접 소금빌레에 나와 돌소금 제염 과정을 일일이 행동으로 보여주었다. 소금빌레에 도착한 그는 먼저 도로 아래 있는 작은 창고에서 제염 작업에 필요한 도구들을 꺼냈다. 돌소금을 만드는 데 필요한 도구들은 생각보다 많았다. 좀팍(폭이 좁고 바닥이 평평한 바가지), 남박(우묵한 원통형 바가지), 수리대 빗자루, 수건, 물통, 차롱, 혹(물혹)1). 여기에 현장에는 없었지만 허벅이 더 있다고 한다. 그가 꺼내든 도구들은 다 플라스틱과 철로 만들어진 것들이었는데 원래는 전부 목재로 된 도구였다고 한다. 안타깝게도 원래 사용하던 도구들은 4·3사건 당시 그의 집이 불에 타며 소실됐다.

소금빌레 작업의 시작은 호겡이2)(물 아찌3)는 돌)를 만드는 것부터 시작된다. 구엄마을은 일부 지역에 벼농사가 가능할 정도로 찰흙 지대가 있다. 그 찰흙을 옮겨와 소금빌레 한쪽에 쌓아둔다. 이후 호겡이의 둑을 쌓는데 이 둑을 ‘두렁이’라고 하고 두렁 작업을 ‘두렁 막음’이라고 한다. 두렁 막음은 정교하고 노하우가 필요한 작업이다. 서툰 사람이 하면 물이 샌다. 해서 주로 경력이 많은 할머니나 어머니들이 했다. 두렁 막음이 끝나 두렁이 단단하게 굳고 나야 비로소 제염 작업을 시작할 수 있다. 가장 먼저 호겡이를 깨끗하게 청소해야 한다. 이때 수리대 빗자루와 수건(당시에는 헌옷을 사용했다.)이 사용된다. 청소가 끝난 호갱이에는 허벅이나 양동이를 이용해 바닷물을 옮겨 채운다. 이후로는 그저 시간이 소금을 만들어 주리라 생각할 수 있지만 아니다. 두 시간마다 지치기를 해주어야 한다. 호겡이는 저마다 암반의 형태에 따라 조금씩 굴곡이 있어 높낮이에 차이가 있는데 그러다 보니 곤물4)이 차 있는 곳이 있고 암반의 표면이 드러난 곳이 있다. 해서 두 시간 단위로 고인 물을 말라 암반 바닥이 드러난 곳에 뿌려 주어야 하는데 이 과정을 ‘지치기’라고 한다. 조두헌 씨는 지치기를 시범 보이며 잠시 어린 시절을 회상했다.

“어머니가 ‘너 빌레 지치고 와.’라고 하면 이 작업을 하라는 거야.”

지치기를 제때 제대로 하지 않으면 바위에 염분이 눌어붙을 뿐 소금꽃이 피지 않는다. 일단 소금기가 눌어붙으면 곤물을 다시 부어도 염도 비율이 맞지 않아 소금이 생기지 않는다. 그러니 두 시간마다 호겡이를 돌며 지치기를 해주어야 하는데 마지막 호겡이까지 지치기를 끝냈다 싶으면 다시 처음 지치기를 한 호겡이에서 지치기를 할 시간이 된다. 그러니 그 노동의 양은 끝이 없는 것이었다.

조두헌 씨는 지치기를 할 때는 무작정 하는 게 아니라 어머니의 말을 잘 듣고 해야 했다고 한다.

“어머니가 ‘졸락졸락’ 지치라고 하면 가까운 거리로 살살 지치라는 뜻이고 ‘잘락잘락’ 지치라고 하면 멀리까지 양을 많이 해서 지치라는 말이야.”

추측컨대 그날의 날씨에 따라 어머니는 ‘졸락졸락’과 ‘잘락잘락’을 판단했을 거다. 지치기를 하다 보면 찰흙으로 만들어진 두렁에서 흙이 흘러나온다. 그 상태로 두면 소금의 빛깔이 탁하고 맛이 덜하다. 해서 곤물이 탁하다 싶으면 물통에 담아두었다가 분순물이 가라앉으면 깨끗한 곤물만 다시 호겡이에 부어야 한다. 곤물을 통에 퍼 담을 때 사용하는 게 좀팍과 남박이다. 남박은 곤물이 많을 때 한 번에 많이 퍼내기 위한 것이고 좀팍은 얕은 곤물을 효과적으로 퍼내기 위한 것이다.

이런 작업을 계속하면서 3단계의 다음 과정을 진행해야 한다. 일차적으로는 모든 호겡이의 염도가 같지만 두 번째는 이 저농도의 함수(곤물)를 몇 개의 호겡이로 모은다. 그렇게 해서 염분농도를 높여가는 거다. 이런 과정을 3단계에 걸쳐가며 진행해 고농도의 함수를 만든 뒤 계란이 뜰 정도의 농도에 이르면 좀팍과 대빗자루, 수건을 이용해 양동이에 담은 뒤 빌레마다 몇 개씩 있는 임시 보관함, ‘혹’에 옮겨 붓는다. 이때 수건이 사용되는 건 약 20일에 거쳐 완성된 고농도의 귀한 함수를 조금이라도 놓치지 않기 위해서다. 이렇게 해서 ‘혹’에 보관해 둔 함수는 일조량이 많은 날 꺼내 ‘소금돌’에 붓고 증발시켜 최종적으로 돌소금 결정체를 얻는다. 얼른 보기에는 비슷하게 평평해 보이는 호겡이지만 그 형태와 위치, 평평한 정도, 돌이 달궈지는 온도차에 따라 용도가 분류되는 거다. 그중에도 가장 평평하며 잘 달궈지는 최상의 돌이 ‘소금돌’로 선택된다. 겨울에는 소금돌의 역할을 가마솥이 대신하기도 하는데 이렇게 만든 소금은 ‘삶은 소금’이라고 한다.

이처럼 복잡하고 고된 작업이다 보니 활자화된 자료만으로는 돌소금을 재현하기 어렵다. 실제로 소금빌레 일을 해본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일이다. 이렇게 완성된 소금은 대바구니로 옮겨 각자 집에 보관했다고 한다. 소금빌레는 개인 소유로 가구당 20~30평 정도를 소유했으며 집안 대대로 상속되었다. 소유의 구분이 약식이다 보니 이따금 염전을 구분함에 있어 주인들 간에 실랑이가 벌어지기도 했다.

돌염전에서 난 소금은 곡물과의 물물교환용으로 썼다. 장전, 소길, 납읍, 용흥리 등 중산간 마을에 가서 팔았는데 올 때 갈 때 무거운 짐을 지는 고된 일이었다. 그러니 소금빌레는 땀과 눈물 서린 삶이자 생계를 유지하기 위한 귀한 수단이었다. 돌염전에 녹아 있는 이곳 사람들의 삶을 제주에서 나고 자란 문순자 시인은 「돌염전」이란 시에서 이렇게 그리고 있다.

 

결은 끝나지 않는 항거의 몸짓이다 주일날 교회 대신 문득 찾은 친정바다 여태껏 갈매기 몇 마리 저 이랑을 겨누고 있다

내 고향은 큰딸에게 돌염전 대물린다밭 대신 20여 평 유산으로 받아든 어머니 구릿빛 내력, 자리젓보다 더 짜다

돌소금 한 됫박이면 겉보리도 자리돔도 한 되 소금구덕 하나로 산간 마을 돌아오면 등짝에 서늘히 젖은 술주정도 묻어난다

엄쟁이에선 더 이상 천일염 못 만든다4.3으로 6.25로 다 떠나보낸 구엄마을 무얼 더 고백하라고 싸락눈 또 오시는가

 

구엄마을에서는 다양한 체험 프로그램을 즐길 수 있다. 가장 이색적인 체험이라면 돌소금 만들기 체험이다. 맛보기로 한 시간 가량만 할 수도 있지만 여유가 있다면 며칠간 시간을 두고 소금이 만들어지는 과정을 지켜보는 것도 의미가 있을 것 같다. 다만 체험 시기는 햇빛이 강한 5~9월이며 비가 잦은 시기에는 소금빌레에서의 체험은 어려울 수 있다. 그럴 경우를 대비해 실내 체험장이 마련되어 있지만 기왕 돌소금 만들기 체험을 하려면 사전에 문의하고 가는 편이 좋겠다. 1인당 체험 비용은 1만 5000원이다.

구엄의 주요 해산 자원인 톳을 이용한 해녀 밥상 체험도 있다. 구엄마을의 선조들은 곡식이 모자라면 톳밥으로 생계를 유지했다고 한다. 톳에는 아연 성분이 들어 노화 방지에 도움이 되고 철분은 우유의 550배나 함유되어 있다. 때문에 제주도 사람들에게 톳은 ‘바다의 불로초’라고 불렸다. 톳을 이용한 구엄마을의 대표 요리는 톳을 넣고 지은 톳밥과 톳물회이다. 톳을 넣은 영양밥을 만들어 본다면 맛과 영양을 동시에 챙길 수 있다.

어린 자녀들을 동반한 여행객이라면 바릇잡이 체험을 권하고 싶다. 바릇잡이란 얕은 바다에서 소라, 보말 등의 해산물을 채취하는 걸 말한다. 구엄마을 어촌계에서는 이러한 체험을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올해도 보말잡이 체험을 준비하려고 100kg의 종패를 뿌려두었다. 안타까운 건 인근 초등학생들이 체험하도록 뿌려둔 보말들을 어른들이 싹쓸이해 가고는 한다는 점이다. 구엄의 주민들은 선조들의 유산으로 살아간다. 구엄의 유산에서 뒤에 올 이들에 대한 배려심을 배웠으면 하는 바람을 품는다.

그밖에도 선상 낚시와 배를 타지 않고 할 수 있는 대나무 줄낚시 체험이 있다. 가족 단위 여행객이든, 연인이든, 혹 홀로 떠나온 배낭여행객이든 체험거리가 충분한 구엄마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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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주

1) 혹(물혹) 진흙과 돌을 이용해 만든 외관상 우물 형태의 간수통. 이재수의 난 때에 천주교의 신도들이 이 혹에 숨어 구명했다는 사실이 전해진다.

2) 호겡이 진흙으로 둥글게 만들어 해수를 담을 수 있게 만든 증발지.

3) 아찌 (물을) 끼얹어 넣다.

4) 곤물 정제된 물, 염분 20% 안팎의 함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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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 애월읍 구엄마을 여행 Tip

 

체험 프로그램을 계획하고 있다면 반드시 사전에 문의를 하길 바란다. 일정한 신청객이 모여야 가능한 프로그램들이 있는 탓이다. 구엄에서 숙박을 하는 이라면 미리 조식에 대해 준비를 하는 편이 좋다. 이른 시간에 문을 여는 식당을 찾기 어렵기 때문이다. 갯바위 낚시를 계획한다면 안전에 대해서 각별한 주의가 필요하다. 현무암의 특성상 돌출된 부분들이 많아 부주의할 시 다칠 염려가 있다. 그리고 개인 쓰레기를 회수할 만한 봉지 정도는 꼭 지참했으면 하는 당부를 남기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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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부의 밥상

 

낚시로 잡은 한치에

제주 가시오이 넣고 상큼하게

 

민수슈퍼식당의 한치회비빔국수

 

P34 한치회 비빔국수_1.JPG 이미지입니다. P34 한치회 비빔국수_2.JPG 이미지입니다.

 

여름철 구엄마을의 수족관을 보면 한치가 없는 곳이 없다. 포구의 어선들은 오후 7시가 되면 출항하여 자정을 즈음하여 귀항한다. 귀항한 배에는 한치가 가득이다. 때문에 한치를 재료로 한 요리가 많다. 가장 기본적인 한치물회를 비롯해 숙회와 먹물째 찐 찜요리도 있다. 하지만 이는 제주도 어느 지역을 가도 접할 수 있는 음식들이다. 여기서는 구엄의 특별한 한치요리를 소개하려고 한다.

P34 한치회 비빔국수_3.JPG 이미지입니다.

부녀회장 출신의 주인장인 고수년 씨가 운영하는 민수슈퍼식당은 얼핏 보면 식당이라기보다는 슈퍼의 느낌이 강하다. 그러나 막상 들어가 보면 메뉴가 제법 다양하다. 그러나 가장 메인 메뉴는 옛날통닭과 한치회비빔국수다. 인근 마을 주민들은 부러 이곳에 들러 안주 삼아 한치회비빔국수를 먹고는 한다.

주재료인 한치는 그물이 아닌 낚시로 잡은 것만 취급하여 급랭해 두었다가 사용한다. 면은 노란색이 예쁜 치차국수. 노란 면발 위로 붉은 양념장으로 버무려진 한치회가 입맛을 돋운다. 부재료로는 제주에서만 나는 가시오이를 비롯해 양파, 적양파, 적양배추, 들깻잎, 배, 돌나물, 그리고 다시마와 멸치 육수로 만든 양념장이 들어간다. 자극적인 양념 맛에 길들여진 이라면 다소 심심하다 느낄 수도 있는 맛이나 재료들 본연의 맛이 잘 살아 있다. 기본 3~4인분에 가격은 3만 원이다.

문의 064-713-1793, 제주시 애월읍 구엄길 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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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농반어 구엄마을

P35 마을 안 밭담.JPG 이미지입니다. 

농사가 실하고, 밭담은 아름답네

P35 하우스 내 오이.JPG 이미지입니다. 

구엄마을은 반농반어 마을이다. 실질적으로는 농가의 비율이 80%가 넘는다. 주로 경작하는 농산물은 오이, 풋마늘, 쪽파 등이다. 특히 오이농사가 주를 이루며 구엄 내 오이 생산량은 도내 소비량의 절반을 차지한다.

문상철(59세) 씨는 1983년도부터 오이 농사를 지었다. 당시만 해도 대나무를 이용해 비닐하우스를 만들었다고 한다. 이때 사용한 대나무는 육지에서 들여온 것이었다. 오이 농사가 시작된 40년 이전의 구엄은 참외와 수박, 담뱃잎 농사가 주를 이뤘었다. 담배건조장용 쇠파이프가 공급되면서 기존의 대나무 비닐하우스에 쇠파이프를 섞기 시작했다. 물론 현재는 대나무로 지은 비닐하우스를 찾아볼 수 없다.

“가시오이라는 품종인데 육지에서는 볼 수 없어요. 전량 도내에서 소비되니까요.”

그의 말대로 가시오이는 제주도에서만 소비된다. 역으로 제주도에서는 취청오이나 다다기 오이를 볼 수 없다. 이런 사례는 돼지고기도 마찬가지란다.

풋마늘은 제주에만 있는 재래종이다. 일반 마늘에 비해 마늘쪽이 자잘한 대신 쪽수가 많고 줄기가 가늘고 연하다. 풋마늘 역시 제주도 내에만 공급되는데 씨알이나 쫑이 아닌 줄기를 먹는다. 씨알은 크기가 작아 상품성이 떨어지기에 대부분 종자용으로 사용하거나 B품으로 판다. 하지만 줄기를 판매하는 게 마늘을 파는 것보다 이윤이 많이 남는다고 한다. 아직 마늘쫑이 올라오기 전인 3월에 수확한 연한 줄기를 이용해 제주사람들은 마늘지를 담근다. 간장과 식초를 이용해 만든 마늘지는 짭쪼름하면서도 새콤한 맛이 난다.

밭이 많은 구엄마을에는 자연스레 밭담도 많다. 제주를 미학적으로 보는 이들은 제주의 아름다움은 점, 선, 면의 조화에서 나온다고 한다. 밭담은 그중 선에 해당한다. 자세히 보면 밭담들은 직선인 형태가 없다. 하나같이 곡선이다. 곡선이어야 보다 견고한 탓이다. 제주의 돌과 사람들의 관계를 보다 보면 자연과 인간이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가 보인다. 제주의 돌은 농사를 짓는 데 척박한 환경을 상징했다. 그러나 사람들은 그 돌을 이용해 어린 작물의 줄기를 부러트리는 바람을 막았고 돌소금을 만들었다. 밭담으로 작물을 보호하고 원담에서는 물고기를 얻었다. 해녀들은 불턱에서 차가워진 몸을 녹였으며 돌로 쌓은 옛 등대인 도대불은 캄캄한 어둠 속 귀항하는 어선들의 길잡이를 해주었다. 때문에 구엄마을의 돌들을 따라 걷다 보면 짜고 뜨거운 삶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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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설명

 

구엄마을의 평평한 현무암은 소금빌레로 쓰였다.

P28 전통어법 원담.JPG 이미지입니다.

구엄마을 앞 바다의 원담. 예전의 멸치 떼 들던 시절은 아니지만, 지금도 마을 주민 몇몇이 가끔 재미삼아 문어, 소라를 줍기 위해 원담에 나온다. 백중(음력 7월 보름)이 지나야 그 재미가 쏠쏠하단다.

P29 중엄마을의 현무암 감은코지.JPG 이미지입니다.

제주의 해안은 화산 용암이 바다로 뻗어 생성된 현무암이 장관을 이룬다. 구엄마을과 이웃한 중엄마을의 현무암은 절경을 빚는다.

P29 송승학 이장.JPG 이미지입니다. P29 구엄포구를 나서는 낚싯배.JPG 이미지입니다.

12대째 제주에 사는 송승학 구엄마을 이장.(왼쪽)

구엄포구를 나서는 낚싯배. 구엄마을은 어부보다는 농부가 많다.

구엄마을.png 이미지입니다.

구엄마을은 과거에 논농사가 있어 찰흙이 났다. 그 찰흙 두렁이로 소금빌레를 구획 짓고, ①날씨에 따라 소금물을 졸락졸락(작게), 잘락잘락(크게) 지쳐서, ②호겡이에 소금이 피면, ③수리대 빗자루로 쓸어 모아, ④대바구니에 옮겨 집으로 가져간다. < 구엄리사무소 제공>

P31 제염법을 설명하는 조두헌 옹.JPG 이미지입니다.

소금빌레에서 제염법을 설명하는 조두헌(82) 옹. 몸이 기억하는 옛 이야기를 알아듣기 쉽게 막힘없이 풀어냈다.

P32 구엄마을 벽화.JPG 이미지입니다. P32 구엄마을 지나는 올레16길.JPG 이미지입니다.

구엄마을 안으로 한 겹 들어서면, 원주민이 운영하는 민박집의 핑크빛 담벼락이 보인다. 제주가 오롯이 그려져 있다.(왼쪽 위) 구엄마을을 지나는 올레 16길.(왼쪽 아래)

P33 팽나무 그늘 여행객.JPG 이미지입니다.

그 길의 야트막한 구릉에 서 있는 팽나무 그늘 아래 여행객들이 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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찾아가는 길

 P33 구엄마을-지도.jpg 이미지입니다.

주소 제주 제주시 애월읍 구엄리 607-5

전화번호 064-713-2239

교통편

- 제주국제공항 → 구엄마을

  • 공항 - 37번 시내버스 타고 -하귀마을에서 하차한다음 - 시외버스 갈아타서 - 구엄리마을에서 하차

- 제주시외버스터미널 → 구엄마을

  • 제주시외버스터미널 - (서회선시외버스 방면) - 하귀 1리 - 구엄리마을에서 하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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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9-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