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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촌여지도 조회
한국어촌여지도 두 번째 여정 고소한 가을, 전어 황금 어장 경남 사천 대포마을
닉네임관리자 작성일2017-09-25 조회수29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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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06-07 경남 사천 사천만 이미지입니다.

한국어촌여지도 두 번째 여정

 

고소한 가을, 전어 황금 어장

경남 사천 대포마을

 

글 송기동 사진 김진수

 

“용왕님이 주는 대로 먹어야지, 욕심 안 부려”

 

 

P06-07 경남 사천 사천만.JPG 이미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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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식가들 발길 이어지는 ‘전어 마을’

“전어 굽는 냄새에 집 나간 며느리 돌아온다.”

“가을 전어 머리에는 깨가 서 말.”

얼마나 맛있으면 이런 속담이 생겨났을까? 경남 사천시 대포동은 7월 중순부터 늦가을까지 전어를 즐기려는 미식가들의 발길이 이어지는 마을이다. 마을 어부들이 마을 앞바다에서 갓 잡아온 싱싱한 자연산 전어를 이곳에서 맛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천 대포마을의 본격적인 여름은 전어로 시작되고, 가을 역시 전어와 함께 깊어간다.

“최고의 ‘골든타임’이 지금입니다. 날 밝아질 때와 어두워질 때…”

동녘 하늘이 시나브로 불그스레 물드는 오전 5시께, ‘남양호’ 정강주(64) 선장(대포마을 어촌계장)이 4번째 그물을 내리기 시작했다. 키를 잡은 정 선장이 배를 왼쪽으로 크게 선회시키는 동안 부인 임영애(61) 씨가 붉은 점멸등이 달린 부표를 먼저 바다에 내렸다. 5분여 만에 뱃전에 실려 있던 250m 길이의 그물이 검붉은 아침 바다로 스르르 풀려나갔다. 잠시 후, 부표를 회수하고 오른쪽 뱃전에 설치된 기계를 가동해 그물을 걷어 올리기 시작했다. 은빛 반짝이는 전어가 한 마리, 두 마리 잇따라 그물코에 걸려 올라왔다.

“(전어가) 빛이 나죠.”

부인 임 씨가 능숙한 솜씨로 그물에서 전어를 한 마리씩 따서 선창에 훌쩍 던져 넣었다.

정 선장 부부의 2.68톤 배에 동승해 대포항을 빠져 나온 시간은 새벽 2시 25분. 행여나 약속 시간에 늦어 배를 놓칠까봐 잠을 설쳤다. 포구에 도착했을 때 바람이 잠잠해도 갯내음이 물씬 풍겨왔다. 컴컴한 바다를 헤치고 나가는 동안 밤하늘을 올려다보니 별들이 초롱초롱했다.

항을 출발한 지 15분 후 사천만 한가운데에서 첫 그물을 내리기 시작했다. 그물 작업을 마친 후 배 중앙에 있는 선창을 열고 산소를 주입, 전어를 맞을 준비를 마쳤다. 전어를 ‘파닥파닥’ 싱싱하게 살아있는 상태로 마을 식당에 넘기는 것이 관건이다. 그물을 수거하기 시작해 그물에 걸린 전어를 떼어 내고 그물추까지 거두기까지는 20여 분이 걸렸다.

“전자 해도에는 ‘진주만’이라고 나와 있는데 우리는 ‘사천강’이라고 부릅니다. 전어가 지금 맛 들었어요. 솔직히 말해서 특히 사천강 전어가 맛있습니다. (손님들이) ‘오리지널’ 전어 달라고 그래요.”

사천만은 남강댐에서 방류된 민물과 남해 바닷물이 섞이는 해역이다. 정 선장 부부가 본격적으로 전어잡이에 나서는 때는 금어기가 풀리는 7월 16일부터이다. 10월 말 또는 11월 말까지 하루 2~3차례, 새벽과 늦은 오후에 바다로 나가 전어를 잡는다. 날이 새면 고기가 없고, 더욱이 한낮은 햇볕이 수면에 반사돼 엄청 덥기 때문에 피한다. 한 번 나오면 보통 3~4회 정도 그물을 내린다.

 

매년 7월 말 자연산 전어축제

사천 지역에서는 어린 전어를 뼈째 썰어 먹을 수 있는 7~8월 여름 전어를 선호한다. 이에 발맞춰 사천시는 타 지역보다 이르게 매년 7월 말에 ‘삼천포항 자연산 전어축제’를 개최해오고 있다. 기름기가 오르고 뼈가 세지는 가을 전어는 포를 떠서 먹거나 구이에 적합하다고 한다.

그물을 내리는 포인트는 매일매일 다르다. 정 선장은 어군 탐지기에 의존하지 않고 그날의 ‘감’을 따른다. 올해는 지난해보다 어황이 좋은 편이다.

“(어군 탐지기) 전파를 쏘면 물고기들이 도망가 버립니다. 전어들이 물위로 뛰어오르는 걸 육안으로 보거나, 물 때리는 소리를 듣고 판단합니다.”

3시 20분에 내렸던 두 번째 그물을 15분 후 걷어 올리자 예기치 않게 전어 외에 ‘오도리’(보리새우)와 ‘뻘떡게’, ‘백조기’도 가끔씩 딸려 나왔다. 어부의 호의로 싱싱한 날것 상태의, 씹을수록 고소하면서 단맛이 도는 ‘오도리’를 맛볼 수 있었다.

정 선장은 젊은 시절 부산으로 나가 10년 정도 목수로 일하다 고향으로 돌아와 30여 년째 전어를 잡고 있다. 오랫동안 작업을 해오다 보니 말을 하지 않아도 손발이 척척 맞는다. 정 선장은 포인트를 잡아 배 속도를 조절하며 방향을 잡고, 부인은 제때 그물을 내리고 걷었다.

정 선장 부부는 전어잡이로 유명한 마도와 인연이 깊다. 정 선장에게는 진외가(아버지 외갓집), 부인 임 씨는 고향이다. 마도를 화제로 삼자 임 씨의 얼굴이 밝아졌다.

“식당에서는 회, 무침, 구이 간단히 세 가지 밖에 안 해먹지만 (마도에서는) 전어 갖고 먹는 방법이 여러 가지라예. 옛날에는 이리 (전어) 배를 따 갖고 요리 양념 발라 쪄 먹는 것도 있고요. 매운탕도 있고, 전어 배에서 구워 갖고 오는 거 시럭 국에 넣어서 끓여 먹고, 배만 갈라 갖고 포 떠 먹고, 지짐도 부쳐 먹고 여러 종류라예. 가을에 잡으면 짚에 엮어 갖고 달아매 놓았다 무하고 지져 먹고… 여기는 모릅니다.”

슬하에 1남 1녀를 두었는데 친손녀, 외손녀 할 것 없이 모두 생선을 좋아한단다. 세 차례 그물을 내리고 걷어 올리고 나자 어느새 까맣던 동녘 하늘이 희끄무레 밝아오기 시작했다. 산 위로 밝게 빛나는 샛별이 눈에 들어왔다. 5시 30분에 네 번째 그물을 완전히 걷어 올리고 귀항을 서둘렀다. 항에 도착한 시간은 오전 6시. 부두에 배를 댄 후 선창에 넣었던 전어를 꺼내 무게를 단 후 식당에 넘기면 하루 일과가 마무리된다. 이날 3시간 35분 동안 4차례 그물 작업 끝에 잡은 전어 양은 기대보다 적은 25㎏가량. 정 선장의 말 한 마디가 귀에 쏙 들어왔다.

“30~50㎏ 사이가 참 좋아. 용왕님이 주는 대로 먹어야지. 욕심 안 부려.”

 

마도 갈방아소리 전승되는 ‘황금 바다’

예나 지금이나 사천만(사천강)은 전어잡이 ‘황금 어장’이다. 또한 1592년 5월 29일, 이순신 장군이 이끄는 조선 수군 함대가 첫 출전한 거북선을 앞세워 왜선을 격파한 ‘사천해전’의 역사적인 바다이기도 하다. 현재 대포마을 전어잡이 배는 9척. 고령화에 따라 13척에서 4척이 줄어들었다. 어촌계 회원은 92명이다. 9척의 배가 그날 갓 잡은 싱싱한 전어를 마을 9곳의 전어 식당에 공급하고 있다.

왜 사천만(사천강)에서 잡은 전어가 유독 맛있다고 하는 걸까? 10대부터 전어 배를 탔다는 주민 석종표(64) 씨는 이렇게 말했다.

“‘황토 지장수’를 먹고 자란 전어이기 때문에 다른 지역에 비해서 전어가 맛있습니다. 황토라는 말은 진주 남강에서 물을 방류하니까 거기서 황토가 흘러나오는데, 그 민물과 바닷물이 섞이는 데서 전어가 서식하니까 여기 전어가 유명합니다. (전어) 수요를 못 당해 다른 지역산 가져오면 (대포 전어) 먹어 본 미식가들은 딱 알아예.”

손암 정약전(1758~1816) 선생은 흑산도 유배 생활을 하며 집필한 해양 생물 백과사전 <자산어보>(玆山魚譜)에서 은백색의 전어가 ‘화살처럼 생겼다’고 해서 ‘화살 전(箭)’자를 사용해 전어(箭魚)라고 기록했다.

“큰 놈은 한 자 정도로, 몸이 높고 좁으며 검푸르다. 기름이 많고 달콤하다. 흑산에도 가끔 나타나나 그 맛이 육지 가까운 데 것만은 못하다.”(정문기 옮김 <자산어보-흑산도의 물고기들>)

비슷한 시대를 산 풍석 서유구(1764~ 1845) 선생은 ‘난호어목지’(蘭湖漁牧志)에서 ‘돈 전(錢)’자를 사용하는 전어 유래에 대해 이렇게 설명한다.

“…상인이 염장하여 서울에서 파는데 귀천이 모두 좋아한다고 하였다. 또 그 맛이 좋아 사는 사람이 돈을 생각하지 않기 때문에 전어(錢魚)라고 한다.”

전어는 아가미 뒤 상단에 검은 점이 있어 ‘점박이’라고 불린다. 특히나 전어는 작은 크기에도 쓰임새가 많은 생선이다. 머리뿐만 아니라 내장까지 먹을 정도로 버릴 데가 없다. 더구나 전어 내장 중에서도 위로 담은 ‘전어밤젓’ 또는 ‘돔배젓’은 “마도에 사돈이 있어야 구할 수 있다.”고 말하던 귀한 젓갈이었다.

전어를 잡는 어로 방법도 바뀌었다. 과거 돛단배에 노를 젓던 시절에는 배 두 척(본선, 지선)이 짝을 이뤄 지선이 그물을 끌고 전어 떼를 원형으로 둘러싸 잡았다. 그물에 걸린 전어들은 가래질을 해서 떠 담았다. 전어잡이의 시초는 전어 떼를 발견하면 갑자기 뱃전을 두드려서 전어를 놀라게 하여 잡는 ‘뚜드름’ 방식이었다고 한다.

특히 전어잡이로 유명한 마도에서는 면사(綿絲) 그물이 썩지 않도록 갈(소나무 껍질)을 돌절구에 넣고 장정 4~6명이 돌아가며 3~4시간씩 방아질을 해 가루로 만든 후 이를 펄펄 끓여 그물을 염색해야 했다. 이때 작업을 하며 부르던 노동요가 현재 전승되고 있는 ‘마도 갈방아소리’이다.

요즘 전어잡이는 엔진을 장착한 선박과 나일론사 그물을 사용하기 때문에 과거에 비해 손쉽다. 대부분 부부가 소형 배를 타고 조상들이 대를 이어 전어를 잡던 마을 앞바다에서 전어를 여전히 잡고 있다. 하지만 요즘 대포동 전어잡이 어부들은 가슴앓이를 하고 있다. 정강주 어촌계장이 속 고민을 털어놓았다. 10톤이 넘는 근해 어업 배들이 야간에 사천만 안까지 들어와 조업을 하고 있는데도 관련 기관 단속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호소다.

“연안에 사는 영세 어업인들 좀 보호를 해 주십사하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근해 허가를 가지고 연안에 들어와 작업을 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거든요. 연안 배 가지고 해야 됩니다. 그것은 법상 ‘쌍끌이’를 하는 겁니다. (그런데) 쌍끌이를 해도 그 배는 잡지를, 절대 규제를 못하고 있거든요. 작년에 (우리 배가) 그물에서 고기를 빼내려 하는데, 그 사람들 배가 우리 그물 위로 지나가요. 실제 생명의 위협을 느낀다니까요. 십몇 톤 되는 것들이 훅 지나가면 우리 작은 배들은 ‘바가지 놀 듯이’ 합니다.”

 

해상 황토 바다펜션에서 특별한 추억

<사천시지>에 따르면 “대포동은 본래 진주군 남양면 지역이었다. 1906년(광무10년)에 고성군에 속했다가 1912년 사천군에 편입되었고, 1914년 행정구역 개편에 따라 남양면 심포·대례·노례동의 각 일부를 통합해 대포리가 되었다. 1956년 7월 8일 남양면이 삼천포시로 편입되면서 대포동으로 개칭되었고, 1969년 대포동과 노룡동을 합하여 노대동이 되었고, 1995년 5월 1일 노대동과 백신동이 합하여지면서 남양 2동에 속했다가 1998년 행정동 통·폐합에 남양동에 속하게 되었다.”고 기록돼 있다.

일제강점기인 소화 14년(1939년) 10월 1일 발간된 ‘지역행정구역명칭 일람’을 들춰보면 남양면에 대포리와 백천리, 노룡리, 신벽리, 송포리, 죽림리, 좌룡리 등 7개 마을이 속해 있는 것으로 되어 있다.

전어 음식점이 몰려 있는 곳은 대례(大禮)마을이다. 마을 앞바다에 있는 ‘한여’(큰 여)에서 유래했다. 들물 때는 모습을 감추었다가 썰물 때는 모습을 드러낸다. 또 심포는 ‘지픈개’로 지면이 다른 마을보다 얕아서 물이 많이 몰려든 데서 붙여진 지명이다.

대포동에는 100가구 200여 명의 주민이 살고 있다. 이 가운데 92명이 65세 이상이다. 최고령은 101세 할머니이다. 그래서 주민들은 “이렇게 건강한 사람 있는 곳이 없다.”면서 ‘장수 마을’이라고 자부한다. 논농사 외에 밭농사(마늘, 콩, 깨)와 키위를 재배한다. 마을 앞 해변을 삼삼오오 모여 청소하던 어르신들은 전어와 얽힌 옛 이야기를 들려줬다.

“옛날에는 전어 잡아오면 발대에 널어 가지고 말려 놓았다가 웃동네에 팔러 가는 거라. 덕곡마을까지 1시간 거리를 (전어를) 이고 가서 보리쌀 바꿔 오고, 진고동 깨 먹고 살았다 아니가.”

특히 대포마을은 지난 2007년 어촌체험마을로 지정됐다. 체험 프로그램으로는 ▲바다위 낚시(1~12월) ▲쏙잡이 체험(3~11월) ▲바지락 캐기(1~4월, 12월) ▲석화 따기 체험(3~4월) 등을 운영한다. 대포마을의 자랑은 해상 황토 바다펜션(6동)이다. 마을 앞바다에 떠 있는 23~30㎡ 정도 규모 돔하우스 형식의 펜션으로, 숙박하면서 바다낚시와 휴식을 즐길 수 있는 공간이다. 내부는 전기 난방이 되고 편의 시설로는 TV와 냉장고, 가스레인지, 싱크대, 화장실까지 갖추고 있다. 성수기(7~9월)와 비수기(10~6월), 주말과 평일 예약은 홈페이지(www.seapensun.net/html/main.php)에서 가능하다.

이와 함께 가로 30m, 세로 10m 규모의 ‘바다펜션 낚시터’(입장료 1인당 1만5000원)도 일출 때부터 일몰 때까지 운영하고 있다.

지인 소개로 경남 함안에서 네 번째 왔다는 한 40대 낚시꾼은 “고속도로와 가깝고, 편하고, 좋은 낚싯대 없어도 참숭어·감성돔이 심심찮게 잡혀 헛방은 안 하더라고요”라고 말했다. 전어 마을의 가을이 깊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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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사천 대포마을 여행 Tip

 

대포항에서 삼천포항으로 이어지는 해안도로는 호젓하면서도 아름다운 풍경을 선사한다. 점점이 떠있는 섬들과 죽방렴, 해넘이를 볼 수 있다. 특히 삼천포항 인근 ‘실안낙조’는 전국 9대 일몰지로 손꼽힌다. 정유재란 당시 왜군과 최후의 결전을 벌이다 희생된 조명연합군 군사들의 넋이 잠든 ‘조명군총’과 지난 2002년 개관한 ‘항공우주 박물관’도 사천 여행길에서 빠뜨리지 말아야 할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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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부의 밥상

 

사천만 새벽 바다에서 펄떡이던 전어

점심땐 미식가들의 입 속으로

 

대포 용이횟집의 전어 회, 무침, 구이

P13 전어 회 무침 구이.JPG 이미지입니다. 

“전어는 생 거도 맛있고, 무쳐도 맛있고, 구워도 맛있고, 밥을 비벼도 맛있죠. 전어는 마지막까지, 머리부터 꼬리, 내장까지 다 먹는 거니까.”

대포 용이횟집 조갑남(63) 사장은 ‘전어 예찬론’을 펼친다.

“여기 안바다 고기(전어)가 최고 맛있어요. (사람들이) 여기 전어는 항상 다른 데 보다 맛있대요. 물이 좋아요. 깨끗하고, 고기가 싱싱하고요.”

조 사장은 대포마을 앞 바닷가가 매립되기 전인 1989년부터 28년째 지금 자리에서 전어 전문 식당을 운영하고 있다. 마을 내 9개 전어 식당 가운데 가장 먼저 문을 열었다.

전어를 이용한 요리는 회와 무침, 구이. ‘전어 3종 세트’다. 전어 금어기가 풀리는 7월 16일부터 10월 말까지 전어를 맛보려는 미식가들로 식당 거리가 붐빈다.

P13 전어 회.JPG 이미지입니다.

흔히 전어는 가을에 먹는 생선으로 알려져 있지만 사천은 광양 등 타 지역보다 이르게 전어를 먹는다. 7~8월 여름 전어가 어려서 최상의 세꼬시(뼈째 썰어 먹는 것)로 먹을 수 있기 때문이다. 9~10월 가을 전어는 고기가 크고 뼈가 세서 포를 떠야 해 구이용으로 적합하다고 한다.

식당 입구에 놓인 큼지막한 수족관에는 은빛 비늘 반짝거리는 전어들이 무리지어 헤엄치고 있다. 새벽에 사천만에서 동네 어부들이 잡아온 싱싱한 전어를 받아 2시간가량 깨끗하게 손질을 한 다음 상에 올린다. 물량이 달려도 타 지역산 전어를 절대 사용하지 않는다. 손님들이 맛을 보면 미세한 식감 차이를 금세 알아채기 때문이란다.

먹음직스럽게 참깨를 듬뿍 뿌린 전어 회와 무침, 구이가 한 상 가득 차려 나온다. 조 사장은 ‘전어 3종 세트’를 회→무침→구이 순으로 먹는 게 좋다고 조언한다. 회는 찰지면서 담백하고, 무침은 새콤하면서 맛깔스럽고, 구이는 기름지면서도 고소한 맛을 입 안 가득 안겨준다. 된장과 초장, 고추냉이 중에서 골라 식성대로 찍어 먹거나, 상추에 싸 먹는다.

마무리는 ‘비빔밥’이다. 남은 회에 초장을 뿌려 밥과 비비거나, 무침을 남겨 밥과 비벼 먹는다. 이때 콩가루를 넣고 비비는 것이 이채롭다. 밥에 전어를 올려 된장과 먹기도 한다.

전어는 단백질과 칼슘, 지질, 무기질, 비타민 등 영양분이 풍부해 몸에 좋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전어는 등 푸른 생선이라 몸에 좋지요. 아침 오고, 점심 오고, 저녁 오고 하루 3번 오는 남자가 있어. 빈혈이 심해 두 달 먹더니만 빈혈이 없다고 그래. 지금도 진주 대학병원 있는 사람이 회를 많이 떠 가요. 각시가 아픈데, (전어)회 먹고 나면 안 아프다고 그래.”

7월 중순~10월 말 ‘전어철’이 끝나면 일반 회를 판다. 전어에 이어 문어를, 겨울에는 물메기탕, 대구탕, 봄에는 주꾸미 샤브샤브, 도다리 쑥국 등을 주로 한다.

문의 055-834-4850, 경남 사천시 대포길 2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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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남 무형문화재 제28호

마도 갈방아소리

 

전어잡이 면사 그물 물들일 갈방아 찧으며

메기고 받는 ‘바다 다듬이질’ 소리

 

“우리 전어 잡으러 바다로 가세~!.”

지난 7월 29일 경남 삼천포항 전어축제 특설무대. 경남 무형문화재 제28호인 ‘마도 갈방아소리’ 공개 행사가 열렸다. 이날 경남 사천 마도 갈방아소리 보존회 박용준(87) 예능보유자와 김봉언(기능보유자 후보) 회장, 황둘선(사무장)·박영철·이우섭 전수조교를 비롯한 이수자와 회원 50여 명이 다섯 마당으로 나눠 마도(馬島)에서 전어잡이를 할 때 부르던 ‘갈방아소리’의 진수를 보여주었다. 과거 면사(綿絲) 그물에 ‘갈’을 먹이고, 어선 두 척으로 전어를 둘러싸 잡아 만선해서 돌아오는 모든 과정을 30여 분 동안 진행해 갈채를 받았다.

갈은 소나무 껍질을 의미한다. 갈방아소리는 갈을 방아질 할 때 부르던 소리이다. 최근까지 전어잡이로 유명했던 마도는 사천만 아래에 자리한 작은 섬이다. 삼천포대교와 창선대교가 징검다리를 삼는 늑도 북쪽의 신도와 저도 한가운데에 있다.

갈방아소리는 전어잡이를 할 때 사용하는 면사 그물에 갈을 먹이기 위해 방아질을 할 때 부르는 노동요다. 마도 전어잡이 어부들이 면사 그물이 썩지 않도록 소나무 껍질을 돌절구에 넣어 방아를 찧어서 가루로 만든 후, 대형 솥에 넣어 그물을 삶으며 피로감도 잊고 작업 능률을 올리기 위해 부르던 소리가 ‘갈방아소리’이다. 그물에 갈을 먹이면 방부 효과가 있어 쉽게 썩지 않는다.

주민들은 전어를 ‘전애’ 또는 ‘전에’라고 발음한다. 과거 전어를 잡던 사천만 바다 역시 ‘강지바다’라고 부른다. 선박 엔진 보급과 나이론사 그물 등 어구의 현대화에 따라 갈방아질은 사라졌으나 다행히 갈방아소리는 끊기지 않고 전승되고 있다. 마도 갈방아소리는 지난 2004년 3월 경남 무형문화재 제28호로 지정됐으며, 50여 명의 보존회 회원들이 공동체 생활 속의 전어잡이 노동요인 ‘갈방아소리’의 명맥을 잇고 있다.

 

면사 그물 썩지 않도록 갈(소나무 껍질) 먹여

마도 갈방아소리는 ▲첫째 마당-갈방아 찧는 마당 ▲둘째 마당-갈을 먹이고 퍼는 마당 ▲셋째 마당-뱃고사 지내는 마당 ▲넷째 마당-고기 잡으러 가는 마당 ▲다섯째 마당-만선을 기뻐하는 마당으로 구성돼 있다.

첫째 마당은 소나무 껍질을 돌절구에 넣고 장정 4명이 번갈아 가며 방아질을 한다. 방아를 찧어 한 가마니를 만드는데 5~6시간씩 걸린다. 앞소리와 방아 찧는 소리가 잘 맞으면 멀리서 듣기에 마치 다듬이 소리와 같아서 ‘바다의 다듬이질 소리’라고 했다. “자~! 선원들~! 우리 신나게 갈방아 한번 찧어 보세”

박용준 예능보유자 등 앞소리꾼이 소리를 하면, 나머지 뒷소리꾼과 방아꾼들이 “에이야 디이야 갈방애야” 로 받아 부른다.

둘째 마당은 가루로 만든 갈을 아낙들이 함지박에 퍼 담아 머리에 이고 무쇠솥(갈솥)에 옮긴 후 물을 붓고 불을 지펴 갈물을 끓인다. 팔팔 끓는 물에 그물을 담갔다가 꺼내 말린다. 하얀 그물이 솥을 거쳐 붉은 색으로 변한다. 앞소리와 뒷소리를 짧게 먹이고, 받는다.

“이 그물로(어~여)/ 싣고가서(어~여)/ 강지바다에(어~여)/ 도장원 해보자(어~여)/ 점박이 큰놈은(어~여)/ 소금에 굽고(어~여)/ 전애머리는(어~여)/ 깨가 서 말(어~여)/ 전애 밤젓은(어~여)/ 사돈께 보내라(어~여)…”

셋째 마당은 출어에 앞서 무녀가 선주, 어부들과 함께 풍어를 기원하는 뱃고사를 지낸다. 남해안 별신굿의 형태를 갖춘다.

“서천국 사바세계 해동조선 경상남도/ 관은 사천시 앉은거와는 마도접수더니/ 해를 다녀 월을 다녀…”

넷째 마당은 바다로 나가는 노(櫓) 소리와 배 두 척이 원형으로 그물을 치고 당겨 전어를 둘러싸 잡는 장면이다. 당시는 전어 떼를 발견하면 갑자기 뱃전을 두드려서 전어를 놀라게 해서 그물로 몰아 잡았다. 그물을 당길 때 부르는 소리가 ‘사리소리’, 전어를 퍼 담을 때 부르는 소리가 ‘가래소리’이다.

“어기여차 가래 소리에(에헤야 가래야)/ 행선한 지 이틀 만에(에헤야 가래야)/ 만선풍어 가래로세(에헤야 가래야)/ 남해용왕 서해용왕(에헤야 가래야)/ 고맙습니다 고맙습니다(에헤야 가래야)/ 칠산바다에 애중선 뜨고(에헤야 가래야)/ 강지바다에 전애 떳구나(에헤야 가래야)/ 강지바다에 전애 뛴다고(에헤야 가래야)/ 모중방 구석에 몽치메 뛸라(에헤야 가래야)…”

다섯째 마당은 전어 배가 만선기를 날리면서 선창으로 들어오는 대목이다. 어부와 주민들이 만선을 기뻐하며 함께 모여 춤추고 노래를 한다.

 

지원 확대와 국가 무형문화재 승격 기대

마도 갈방아소리는 지난 2001년 경남 민속예술경연대회에서 우수상, 2002년 충주에서 열린 제43회 한국민속예술축제에서 문화관광부장관상을 수상한 바 있다.

마도 갈방아소리 전수관(사천시 선진공원길 326번지)은 지난 2010년 11월 개관했다. 현재 보존회 회원은 54명. 마도에서 여전히 살고 있는 박용준 예능보유자를 비롯해 마도가 고향이면서 삼천포에 나와 사는 주민 외에 멀리 진주에 사는 회원도 있다. 회원들은 한 달에 두 차례 전수관서 모여 갈방아소리를 연습한다.

회원들이 고령이다 보니 애로가 많다. 공연 때 사용하는 축소 모형 배도 좀 더 가볍게 만들었다. 이전에 사용하던 목선은 너무 무거워 운영하기가 힘들었다. 공연 때 배를 움직이기가 쉽지 않고, 공연 전후 운송도 크레인을 동원해야 해 비용도 많이 들어갔다.

김봉언 회장은 “마도라는 섬이 우리 지역의 자랑이니까 전승해 나가야 한다. 단체 종목 전승하기가 힘들다. 밥벌이 되는 것도 아니고 하루 일과를 버리고 가는데 젊은 사람들이 안 하려고 한다. 정부에서 단체 종목에 지원을 많이 해줬으면 하고, 국가 중요 무형문화재로 승격됐으면 한다.”고 말했다.

 

사진설명

 마도 갈방아소리 1.jpg 이미지입니다.

돛단배에 노 저어 전어를 잡던 시절, 갈(소나무 껍질)을 방아질 하고 그 그물로 전어를 둘러싸 잡아 가래로 퍼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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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도 갈방아소리 2.png 이미지입니다.

마도 갈방아소리

예능보유자 박용준씨

 

“전어 얘기 다 할라카먼 말도 못합니다”

 

박용준(87) 마도 갈방아소리 예능보유자는 마도에서 평생을 전어와 함께 했다. 16살에 전어 배를 타 70살 가깝도록 사천만 ‘강지바다’에서 전어를 잡았다. 그는 “(갈방아소리는) 아버지, 형님들 하는 걸 따라서 배웠다.”고 말한다.

8월초, 예능보유자를 만나기 위해 삼천포항 구항(어항)에서 마도행 배에 올랐다. 뭍과는 직선거리로 불과 1.1㎞밖에 떨어져 있지 않은 작은 섬이다. ‘전어만 바라보고 살 때’는 저도와 마도 인구를 합쳐 500여 명이 살았고, 주막집도 여러 집이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현재 마도 인구는 35가구 76명이다. 엔진을 장착한 배와 나이론사 그물이 사용되며 마을 해변에서 해오던 갈방아질은 끊겼다. 마을에서 만난 예능 보유자의 바람은 많은 젊은 사람들이 ‘마도 갈방아소리’를 익혀 오래도록 이어나갔으면 하는 한 가지다.

 

그물에 갈(소나무 껍질)은 왜 먹이나요?

옛날에는 면사를 안 썼습니까? (그물이) 썩어버려. (그물이) 삶을수록 좋고, 갈칠 할수록 오래 갑니다.

 

갈은 언제 먹여야 하나요?

음력으로 6월부터 12월까지 전어를 잡아. 6개월 사업인데, 전어 잡는 기간에 15일 만에도 하고 20일 만에도 하고 자주 해야 합니다. 겨울 동안 놔두었다가 이듬해에 다시 합니다.

 

갈은 어디서 구하나요?

하동 장에서 사와. 소나무 껍질만 많이 팔아요. (마도에서 하동 장까지) 돛을 달고 노를 저어서 갑니다.

 

삶을 때 갈 외에 풋감(땡감)도 넣나요?

(갈 솥에) 큰 물 20동이를 부어요. 나무가 많이 들어요. 염나무, 장작… (갈)가루 내서 물 팔팔 끓여요. 풋감은 안 들어갑니다. 자주 하면은 (그물이) 붉었다가 까매져요. (그물을) 손질해서 삶고, 손질해서 삶고 자꾸 해요. 지금은 편안하고 좋다 아닙니까.

 

갈방아소리는 어떻게 배웠나요?

아버지, 형님들 하는 것 따라서 배워 가지고 하는 것인데.

 

왜 사천만 ‘강지바다’에서 전어가 많이 잡히나요?

강지바다 뻘이 좋으니까 전어가 봄부터서 들어와요. 아주 물가(해변)까지 들어옵니다. 전어잡이 가면은, 굵은 전어가 알배 가지고, 직접 잡았거든. 이 바닥 뻘 먹고 커나놓으니까 맛도 있고. 지금은 (전어 맛이) 전에만 못해요.

 

돛단배 시절에 전어는 어떻게 잡았나요?

(배 두 척이) 싸가지고 잡아. 옛날에는 전어배가 아니라 ‘싸잇배’라고 해. 싼다고 해서. 본선 9명, 지선 3명 12명이 탑니다. 선장, 깃대잡이(선두), 그물 놓는 사람 2명, 노 젓는 사람 4명, 밥하는 사람(잡일), ‘뒷발무상’(그물을 뒤에서 올리는 사람)… 역할이 다 있어요. (그때는) 돛단배가 12척까지 있었는데 지금은 4척이 전어잡이 합니다. 요새는 기계로 (배 한 척당) 둘이서 합니다.

 

뱃전을 두드려서 잡았다던데

그물을 뱅~ 놔놓고 두드리고 다닙니다. 전어들이 두드리는 소리에 놀래서 (그물 쪽으로) 도망가게 해서 잡아.

 

만선해서 마을로 들어올 때는 어땠나요?

소리 나는 것 두드리며 물동이 같은 것 두드리고 들어와. 전라도 고흥배, 장삿배 큰 배가 소금을 한배 싣고 와 (염장해서) 전어 싣고 갑니다. 그때는 마리를 셌어요. 나무로 돼 있는 동이, 한 동이가 2000마리야. 전어 얘기 다 할라카믄 말도 못합니다.

 

앞으로 바람은?

지금 내가 힘을 못써요. 젊은 사람들이 (보존회에) 많이 들어오면 좋겠는데, 우리 동네 사람만 해도 안 할라케요. 제일 그게 문제입니다. 젊은 후계자 여럿이 하면서 (갈방아소리를) 이어 나갔으면 좋겠는데, 특히나 (젊은) 동네사람들, 마도 사람들이 이어서 하면 좋겠는데 안 할라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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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설명

 

동쪽 하늘이 붉게 물드는 시간, 정강주·임영애 씨 부부가 네 번째 그물을 걷어올리고 있다. 주민들이 ‘사천강’이라고 부르는 사천만은 전어를 잡는 ‘황금 바다’ 이다.

P08 삼천포대교 야경.JPG 이미지입니다.

경남 사천시 삼천포항과 남해군 창선면을 연결하는 삼천포대교 야경.

P09 정강주 어촌계장.JPG 이미지입니다. P09 은빛 전어.JPG 이미지입니다.

밝은 표정을 짓는 정강주 대포마을 어촌계장.(위) 그물코에 걸려 올라온 ‘은빛’ 전어.(가운데)

P09 전어잡이를 마치고 돌아오는 어민들.JPG 이미지입니다.

새벽 전어잡이를 마치고 돌아오는 대포마을 어민들.

P10 전어를 옮기는 어민들.JPG 이미지입니다.

새벽에 잡은 전어를 옮기는 어민들.

P11 파도를 보며 즐거워하는 아이들.JPG 이미지입니다. P11 해상 황토 바다펜션.JPG 이미지입니다.

 

삼천포대교 아래에서 파도를 보며 즐거워하는 아이들.(왼쪽) 대포마을에서 운영하는 해상 황토 바다펜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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찾아가는 길

 P12 대포마을-지도.jpg 이미지입니다.

주소 경남 사천시 대포길 255

전화번호 055-834-4988/ 010-9117-4988

홈페이지 seantour.com/village/daepo/main/

교통편

- 승용차

  • 서울→경부 고속도로→대전~통영간 고속도로→사천 IC→대포 어촌체험마을
  • 부산→남해 고속도로(순천 방향()→진주→사천 IC→대포 어촌체험마을
  • 광주→남해고속도로(부산 방향)→곤양IC→서포면소재지→사천대교→대포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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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09-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