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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와 이야기

바다와 이야기 조회
강경 1
닉네임관리자 작성일2015-12-08 조회수44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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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경 1 boardView22

강경(江景 GangGyung)이 한반도에서 특별했던 것은 바다항구의 기능을 갖고 기능했던 강의 포구라는 점이다. 강경은 서해의 바다배가 밀물을 타고 금강(錦江)을 따라 한반도의 중심 내륙으로 깊게 들어올 수 있으며, 또한 상류의 강배가 서해에 면한 금강 하구까지 내려갈 수 있었던 최종점이었다.

 


 

 

 

강경 1

 

 

 

서해와 금강의 해운

강경(江景 GangGyung)이 한반도에서 특별했던 것은 바다항구의 기능을 갖고 기능했던 강의 포구라는 점이다. (이 글은 포구와 나루를 구별하지 않는다.)  강경은 서해의 바다배가 밀물을 타고 금강(錦江)을 따라 한반도의 중심 내륙으로 깊게 들어올 수 있으며, 또한 상류의 강배가 서해에 면한 금강 하구까지 내려갈 수 있었던 최종점이었다.

한반도의 물류 이동은 철도시스템이 도입되기 이전까지 해상운송에 크게 의존하였다.  해운운송은 바다의 파도를 타는 폭이 넓은 바다배, 그리고 강의 흐름을 타고 거슬러 올라갈 수 있는 폭이 좁은 배로 나뉘어 이용되었다. 

이에 내륙으로부터 조세와 물산은 강 하류의 포구까지 이동되어 집산되었고, 이곳에서 바다배로 갈아 선적되어 서해를 지나 개경이나 서울로 이동되었다.  물론 바다배의 물산도 내륙운송을 위해서 강 하류의 포구에서 하역된 후 다시 강배로 선적되어 이동되었다.

강경은 임진왜란 이후 한반도에서 서해와 호남의 물산들이 집산되어 보관되고, 한반도 내륙의 전역으로 뻗어 나갔던 해운운송과 물산유통의 거점이었다.  특히 포구 배후의 하천들과 넓은 평지는 항구가 성장하기 위해 필요한 넓은 시장과 창고의 공간을 제공해주었다.  한편 강경은 한반도의 바다항구가 본격적으로 조성되며 철도를 이용한 내륙운송시스템이 개발되면서 이러한 물산유통의 중심기능을 잃고 쇠퇴하였다.


금강의 염분 범람원

강경은 한반도 중앙 내륙을 관통하며 흘러내려온 금강이 크게 회전하며 방향을 바꾸는 곳이다.  이곳은 특히 서쪽의 완주로부터 흘러나온 논산천과 강경천이 금강을 만나며 거대한 충적토의 범람원을 형성하였다. 

일제강점기에 직선화된 논산천과 강경천을 보면, 과거 굽어 흐르던 두 하천의 형태를 상상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강경은 이러한 지리적 특성으로 서해의 바닷물이 유입되어 염분을 품은 갈대밭이기도 했다.  이에 강경은 사람이 거주하기 부적합한 곳으로 여겨져 왔다.


은진의 채운들

강경이 한반도의 지도에 나타나기 시작한 것은 북동쪽 내륙의 은진(恩津)의 항구로서 성장하면서이다.  이러한 강경의 항구기능은 19세기 중엽까지도 계속되었다.  은진은 논산천을 중심으로 ‘채운들’이라 불리는 넓은 논강평야(論江平野)를 갖고 있던 이 지역의 행정거점이었다.  백제는 은진에 당시 5개 지역행정거점 중의 하나인 ‘동방성(東方城)’을 조성했다.

은진은 또한 금강 하류지역에서 육상교통을 통해 한반도의 남부지역으로 내려가는 남쪽길(지방도 799)와 동해로 나가는 동쪽길(국도 4)의 분기점이었다.  이에 백제의 부여(사비)는 사비문을 나와 은진을 통해서 남쪽으로 금마의 왕궁과 전주로 연결되었고, 동쪽으로 멀리 경주로 연결되었다.  이러한 이유로 은진은 660년을 전후로 백제와 신라의 전략적 요충지였다.  특히 고려의 은진은 이러한 육로와 논산천의 중심포구로서 현재 은진면 등화동에 입지했던 시진포(市津浦)/이루진(移樓津)을 통해 조세와 물산운송의 거점으로 기능했다.

한편 강경이 이 지역에서 독자적인 경제활동의 거점으로 기능하기 시작한 것은 아마도 1630년대로 추측된다.  이 시점은 임진왜란(1592-1598)과 병자호란(1636-1637)의 직후이며, 한반도에서 본격적으로 육로와 해로가 기능하며 시장이 형성되었다.  이와 함께 강경에는 내륙으로부터 이주해온 농민들이 주거지를 형성하기 시작하였다.


옥려봉, 채운산, 황산

강경은 세개의 구릉들인 옥녀봉(玉女峰)이라 불려왔던 강경산(江景山, 48 m)과 그 남쪽의 황산(黃山), 그리고 내륙의 채운산(采雲山, 57 m)을 중심으로 강경천과 논산천을 따라 넓은 평지를 갖고 있다.  실제로 강경(江景)이란 단어는 ‘넓은 평야와 낮은 구릉의 배경을 둔 금강의 경치’를 의미한다.  

옥려봉은 부여를 지난 금강이 남동방향으로 흘러내려오다 크게 회전하여 북서방향으로 그 방향을 바꾸며 논산천과 강경천이 합류하는 곳이다.  강경사람들은 이곳의 용영대(龍影臺)에서 선박의 안녕을 기원하는 용신제/용왕제를 지냈다.  옥려봉은 무엇보다 서해부터 금강을 따라 동서남북 방향으로 내륙의 넓은 시야를 갖고 있다.  이에 고려의 강경은 서해안과 내륙의 연결하며 특히 중부와 남부 지역들간의 봉수거점으로 기능하였다.

한편 내륙의 채운산은 강경의 초기마을인 채운향(彩雲鄕)이라 불린 채산리(採山里) 마을이 형성되었던 곳이다.  채산리 마을은 남북의 긴 옥녀봉길을 통해 옥려봉을 지나 홍교(미내다리)를 넘어 현재 논산인 은진으로 연결되었다.  채운산의 정상에는 채운산성(彩雲山城)이 조성되어 마을의 방어요새와 병영으로 기능했다.

또한 황산은 금강 변의 남쪽과 북쪽의 넓은 들과 특히 이곳을 누렇게 만드는 금강의 석조를 경험할 있는 경관점이다.  이곳에는 강경의 사설교육시설인 황산서원이 1626년(인조 4)에 조성되었고, 이후 1665년(현종 6) ‘죽림’의 이름으로 사액서원이 되었다.


다섯개의 강경포구와 시장

그렇다면 강경의 항구는 과연 어디에 어떻게 형성되어 기능했을까?  그리고 항구의 중심을 구성하는 시장은 또 어디에 형성되어 기능했을까?

강경은 역사속에서 금강 변의 강경산(옥려봉)을 중심으로 총 다섯개의 포구들이 서로 다른 입지에서 작동했던 독특한 항구이다.  물론 이들 중에서 현재까지 남아서 기능하는 강경의 포구는 아쉽게도 남아있지 않으며, 어디에 언제 조성되었는가에 관한 명확한 자료와 지도도 부재하다.  이는 강경의 포구와 나루의 입지를 결정했던 논산천과 강경천의 형태가 일제강점기에 수로조성을 목적으로 크게 변화되었고, 이에 따라 포구와 나루도 이전되었기 때문이다. 

강경의 다섯개 포구들은, 먼저 황산 밑의 ‘황산포구(배다리)’, 은진의 포구로서 1630년대 이전부터 기능했던 논산천의 ‘불암포구’, 조세창고로서 (현)강경우체국 부지에 입지했던 강경창(江景倉)과 연계되어 기능했던 옥려봉 주변의 ‘강경포구’, 1868년을 전후로 기존의 강경포구와 불암포구의 기능을 모아 조성되어 생선 시장(상시장)과 기능했던 ‘옥려봉포구’, 그리고 일제강점기에 강경갑문(1932) 옆에 조성된 ‘신강경포구’이다.

강경포구들의 성장과 함께 시장도 성장하였다.  강경의 첫 시장은 1630년 전후에 과거 강경천변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흥미로운 것은 이 시장이 생선시장이 아닌 곡물시장(하시장)이었다.  이후 하시장은 1808년을 전후로 (현)남일당 한약방 북쪽으로 강경천변의 매립지로 이전해왔다.  한편 강경에는 1870년을 전후로 홍교로를 따라 동쪽과 서쪽에 각각 하시장과 생선시장(상시장)이 작동하였다.  특히 일제강점기에 강경천이 직선화되면서 강경의 시장이 새롭게 조성되어 기능하기 시작했다.

 

 

20151208163604761_1SAT39CZ.jpg 이미지입니다. 
강경의 옥려봉, 왼쪽으로 금강의 황산대교, 중앙부의 죽림서원

 

 

20151208163630808_BYW04YT9.jpg 이미지입니다.

강경천에서 바라본 옥려봉과 서창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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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1208163706839_KY09HF3N.jpg 이미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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콘텐츠 최종 수정일 :
2016-11-23